“신이시여/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너무 늦기 전에/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언제나 집중하여/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빠르고 효율적으로/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소서/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부디 은총의 손길로/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주소서”
 
이미 잘 알려진 ‘소방관의 기도’지만 들을 때마다 여전히 아리하게 다가온다. 

황망함속에 광주소방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의 장례가 치러진 오늘같은 날은  더욱 그렇다.

다시 한 번 본인의 생명은 내놓고 남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의 용기에 고개를 숙인다.

이번 사고에서 나타났듯이 소방공무원이라면 어느 누구 하나 사고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화마와 사투를 벌이는 현장의 소방공무원이라면 더 예외가 없다.

때문에 위험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한다. 

소방청의 집계를 보면 더 실감난다. 최근 5년간 2509명의 소방관이 공무 중 부상을 입거나 순직했다. 매년 평균 502명이 화마에 희생되는 것이다.

거기에 순직과 공상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어디 그 뿐인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소에도 심한 직업병에 시달린다.

지난해 소방청이 발표한 '전국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전수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 인원 5만2245명의 소방관 중 응답자의 4.9%에 해당하는 2453명이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될 정도다.

구체적으로 '지난 1년간 자살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자만도 8.9%(4436명)였다.

다시 말해 상당수 소방관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겉으론 국민들의 든든한 파수꾼이지만 정작 본인들은 속으로 마음의 병을 앓으며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자해행동을 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3.1%(1566명)로 집계됐다.

거기에 '죽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자해행동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0.1%인 53명이 '예'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 겪는 스트레스의 심각성을 대변하고 있다.

이들 53명의 4대 주요 스트레스 현황을 보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관리·치료가 필요한 '위험군' 비율이 54.7%로 조사됐다.

수면장애 위험군은 81.1%에 달했고 음주습관장애(62.3%), 우울증(67.9%) 위험군 비율 역시 두드러졌다.

더불어 소방관들이 최근 1년간 소방 활동 중 외상 사건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에 평균 7.3차례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외상사건 경험으로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심폐소생술 대상이 완전 심정지 되는 경우’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교통사고’ ‘부패해 심한 냄새가 나는 시신 수습’ 위험한 정신질환자에게 도움 제공 등을 꼽았다.

이처럼 끔찍한 장면에 자주 노출되다 보니 36.8%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데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평균 수명도 58.8세로 남성 평균보다 무려 18세나 낮다.
 
하지만 재난 현장에서 신체·정신적 위험에 노출돼 부상과 트라우마를 겪는 소방관들을 치료·연구하는 휴양소는 물론이고 이들을 위한 전문 병원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소방관들은 오늘도 ‘소방관의 기도’를 가슴에 품고 위험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다.

이번 김동식 구조대장의 희생을 계기로 그들의 헌신이 헛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