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혹독한 추위가 닥쳐도 땅속 깊은 곳 봄이 움트는 소리는 들리는 법이다. 자연의 조화다.

조금 이른 그 시기가 지금이다. 봄을 뜻하는 춘(春) 역시 햇볕을 받아 풀이 돋아나오는 모양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예부터 봄은 생명과 희망의 첫 출발로 여겼다. 하지만 희망의 새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해가 바뀌었다고 당연히 오는 것도 아니다.

입춘(立春), 즉 봄을 세우는 자세와 준비가 있어야만 우리에게 다가온다. 조상들은 이 같은 진리를 간파, 입춘첩을 붙이고 남몰래 공덕을 쌓았다.

그래야 일 년 내내 횡액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입춘절에 어려운 이웃을 찾고 행운과 경사를 기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린다고 해서 하늘의 뜻에 따르지 않는 불경스런 행위도 자제했다.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그래서 입춘 전날 밤 각자 생각한 선행을 실행에 옮겼다. 집안을 치우는 작은 일에서부터 남의 아픔과 힘듦을 보듬는 일까지 내용도 다양했다.

이런 선행은 아무도 볼 수 없는 밤에 주로 이뤄졌다는 데서 진정성도 느낄 수 있다.

비록 매년 찾아오는 절기이지만 해가 바뀌었다고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기에 충분하다. 

입춘을 ‘들 입(入)’자가 아닌 ‘설 립(立)’자 ‘立春’,으로 쓰고 ‘봄을 세운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어느 한 해 그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겠는가마는 사실 돌아보면 지난 겨울은 혹독했다. 새삼 설명치 않아도 세파는 매서웠고 삶은 추웠다.

몸은 나무처럼 헐벗었고, 마음은 빈 가지처럼 시렸다. 그런 고통을 감내하며  ‘암울한 계절’을 넘어 왔다.

그리고 오늘(4일) 입춘을 맞았다.  ‘진정한 한 해의 시작이자 봄의 기점’이 어김없이 도래한 것이다.

오늘 만이라도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기운을 느끼듯, 절망의 터널에서 희망을 얘기하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가 하면 내일(5일)은 상원(上元)이라는 대보름이다.  고리타분한 이야기같지만, 예전 같으면 오늘 밤 가족들과 함께 밤·호두·은행·잣 등 부럼을 깨물면서 한 해 무탈하기를 기원했다.

대보름날 이른 아침 이명주(耳明酒)도 마셨다. 일명 '귀밝이술'이라 부르는 차갑고 맑은 청주를 마시며 1년 내내 좋은 소식 듣기를 소원했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변해도 날마다 좋지 못한 소식이 점점 더 난무하고 있다.

자질구레 조목조목 이야기 하지 않아도 정치가 그렇고 사회, 경제가 힘들고 시끄러운 얘기들 뿐이다.

그렇지만 다시한번 입춘과 대보름 세시행사를 통해 가족과 나라의 안녕을 빌어보자.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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