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맞춤형 학습을 제공합니다”

“재능을 찾아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실현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행복 가꿈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존중의 마음으로 타인과 어우러지는 균형 잡힌 인재로의 성장을 도모합니다”

어느 고등학교 신입생 모집 팸플릿 내용이다. 더 바랄 게 없다. 어떻게 이걸 실현하는지 보고 싶고, 이 나라는 지금 교육 천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문제는 대입전형, 수능시험이다. 수능 때문에 저 ‘공약’도 허사(虛辭)가 된다.

유치원, 초등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면 부정할 사람이 별로 없겠지? 사정은 곧 바뀐다. 초등 ‘의대 준비반’ 소문은 그렇다 치고 중고등은 말할 것도 없다. 학교마다 그 어떤 이상적 활동을 구상해도 학생들은 오래지 않아 겪게 될 수능시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 학생들을 보고 유·초등 때처럼 여전히 마음 편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얘기하긴 어렵다.

우리 교육은 지금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쉽사리 손을 댈 수가 없는 거대한 함선 같다는 느낌이다. 그 병을 언급하는 사람은 많지만, 모두 동의하고 지지하는 신통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딴에는 정확한 진단이라 해도 인정받기가 어렵고 마침내 어떤 진단이 정확한지조차 알 수가 없다.

수시전형 비율이 끝없이 상승하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공정성 문제가 불거지자 고위직이 나서서 “98점과 99점은 엄연히 다르다!”고 유치원 아이라도 모를 리 없는 말을 하자 논의는 일시에 중단되고 정시와 수능이 힘을 얻는 기이한 현상을 겪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차원에서 사교육·변별력과 연계하여 논의가 이루어지고 교육부에서 특단의 대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선생님들은 말이 없다. 정치권과 정부 간에 의견이 오가고 학원가 인사들이 등장해서 진단·예측하고 학부모와 학생들 간에 걱정하는 기류가 흐르자 EBS 강의로 유명해져서 연봉 수십억 제안을 받기도 했다는 현직 교사가 나서서 어떤 변화가 있어도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의견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기야 “하던 대로 열심히!” 그보다 나은 처방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학교는 본래 조용한 곳일까? 교육행정을 하다가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가 그동안 변화·혁신을 그렇게 외쳐댔는데도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변함없이 조용하게, 편안하게, 어쩌면 행복하게 잘 있는 걸 확인하고 한편으론 기가 막히고 다른 한편으론 다행스러워한 적이 있다. 학교가 ‘흔드는 대로 다 흔들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의 저 ‘말 없는’ 선생님들, 우리의 ‘마지막 희망’인 학생들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지만 그것도 아니다. 걱정이 없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어느 날 (돌연) “지혜는 제쳐놓고 지식만 주입하는 학교는 필요 없다!”고 하면? 그럴 리 없나? 마침내 지식의 최고 권위를 자랑할 AI가 지금쯤 교육 점령을 꿈꾸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지식 주입쯤이야!’) 그 지식만 해도 그렇다. 상위(혹은 하위) 그룹에만 집중하는 학교는 싫다면서 하위(상위) 그룹이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면 또 어떻게 하나? 학교가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2050년까지 세계의 학교 95%가 사라질 것(데이비드 갤런터, 2000)이라는 예언이 적중하면 어떻게 될까?

교육의 주체는 누구인가? 수능시험 출제자? 선발방법에 지나지 않는 수능시험 따위가 학교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진도나 나가는 곳이 아니다. 일사불란, 똑같은 걸 가르치고 배운다면 AI나 인터넷 강의가 절대적으로 유리하겠지. 교사가 왜 필요하겠나. 가령 500만 학생이라면 500만 가지 학습방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가령 1만 개 학교는 당연히 1만 가지 방법으로 그 학생들을 돕는다. 학생들은 장차 똑같은 로봇으로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한다. 입학전형도 그렇게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의 존재 가치가 성립된다. 선생님들은 말이 없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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