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풀검의 이 책은 꽤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유명하다. 유치원을 다녔건 다니지 않았건 석·박사 학위를 가졌건 그렇지 않건 제목을 보는 순간 괜히 멀리 돌며 헤맨 것 같은 때늦은 깨달음, 그 깨달음의 경이로움 같은 것이 새삼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라는 단 한 마디는 거의 누구에게나 충분할 것 같다.

이렇게 시작된다.

“그때 나는 뜻있게 사는데 필요한 것은 거의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며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내 신조는 이렇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원이란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일학교의 모래성 속에 있다. 아래에 적은 것들이 내가 배운 것들이다.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져라(Share everything)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Play fair) ∘남을 때리지 말라(Don't hit people)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놓아라(Put things back where you found them.)…”

이 열거는 열여섯 가지인데 그걸 다 들여다보거나 일부러 암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유치원 선생님은 분석이나 암기에 대해선 전혀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열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만일 우리 모두―전 세계인이 다―매일 오후 세 시경에 쿠키와 함께 우유를 마시고 담요를 덮고 누워 낮잠을 잔다면 세상이 얼마나 좋아지겠는가! 생각해보라. 혹은 모든 정부가 물건을 발견했던 자리에 늘 도로 갖다 놓고, 그들 자신이 어지럽힌 것은 스스로 치운다는 기본적 정책을 가지는 상황을. 서로 손을 잡고 의지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은 진리이다.”

거의 누구나 잘 배워 실천했던 것들이지만 이제 와서 그 쉽고 간단한 것들을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할 세상이 되었다. 오늘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 다른 아이를 죽도록(도저히 살아갈 수도 없도록) 괴롭히는 아이들, (일부) 학부모들이 저지른(팔뚝 드러낸 원시인 같은) 아름답지 못한 일들(그런 학부모들은 아이와 함께한 밥상머리에서부터 혹 무엇인가 기이한 발언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잘난 지도자들이 패권을 쥐고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사람이 수없이 목숨을 잃고, 그 ‘잘난 지도자’와 똑같은 인격을 지닌 인간이면서 설명 불가능한 아픔과 굶주림을 겪고 있는 기막힌 상황들… 

그 학부모들, 그 지도자들은 유치원도 다니지 않은 것일까? 아니지! 그럼 대학을 다녔어도 배움이 부족한 사람들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사회지도층이 되고 지도자가 되었을까?

빛나는 업적을 이룬 명망 높은 인사들의 인터뷰를 보면 거의 자신을 잘 이끌어준 어떤 저명한 사람을 존경한다고 뇌까린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바지에 ‘실수’를 해서 속옷을 벗기고 갈아 입혀준 그 곱고 따듯한 손은 애써 잊고자 한다. 그때 그 아름다운 선생님의 마음을 가슴속에 품고 살면 훨씬 더 행복할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우리가 선망해 마지않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흔히 초중고등학교 어느 교사로부터 잊을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는 인터뷰를 보면서도 그렇게 한다.

영국 왕 찰스 2세가 명문 웨스트민스터 학교를 찾아가 교장 리처드 버스비의 안내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교장은 왕 앞에서 모자를 쓴 채 당당하게 걸었고, 왕은 모자를 팔에 낀 채 교장의 뒤를 따라다녔다. 행사가 끝나고 교문 앞에 선 교장이 비로소 허리를 굽혔다. “전하, 부디 저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저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저는 학생들을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길’을 떳떳이 가려면 아직 어려서 아이의 전부를 통째로 돌볼 수밖에 없는 선생님들을 더 존중하자는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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