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수원시 팔달구청에서 열린 ‘필동 임면수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사업회’ 발족식. (사진=수원일보)
22일 수원시 팔달구청에서 열린 ‘필동 임면수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사업회’ 발족식. (사진=수원일보)

[수원일보=이민정 기자] 수원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필동 임면수 선생 탄생 150주년(2024년)을 앞두고 선생의 독립정신과 애국애족의 뜻을 기리는 기념 사업회가 발족됐다.

‘필동 임면수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사업회’는 22일 오후 6시30분 수원시 팔달구청 대회의실에서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는 임면수 선생 손자인 임병무 씨(시인)와 염태영 경기도경제부지사, 김봉식 수원문화원장, 최호운 (사)화성연구회 이사장, 김동수 삼일공업고등학교 교장, 유문종 전 수원시 제2부시장, 방송인 정재환 씨를 비롯한 많은 기관·단체장과 시민들이 참석, 뜻을 같이 했다.

한동민 박사(수원화성박물관장)의 사회로 진행된 발족식은 한준택 준비위원장(경기르네상스포럼 상임이사)의 경과보고, 조현삼 변호사의 사업계획 및 예산 설명, 최호운 박사(화성연구회 이사장)의 조직계획 설명, 김봉식 공동대표(수원문화원장)의 대표단 인사, 홍보대사 위촉장 수여(방송인 정재환), 삼일공고 2학년 김태진·박지서 학생의 발족선언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으며 발족식 후에는 방현석 소설가의 '소설 범도 이야기' 특별강연이 이어졌다.

이날 공동대표로 추대된 김봉식 수원문화원장은 “수원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면서도 크게 조명 받지 못해 안타까웠던 임면수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 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가치가 있다”면서 “이 자리가 임면수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우리주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발족 선언문을 통해 앞으로 교육, 강연, 전시, 평전 발간 등 사업을 펼치면서 선생의 독립정신을 되새기고 현장 답사를 통해 생생한 역사를 경험하는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이는 수원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과 더불어 평화 인권 통일을 염원하던 임면수 선생을 만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수원시민들은 지난 2015년 광복70주년을 기념, 수원시청 앞 올림픽공원에 시민 헌금으로 선생의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이어 지난 5월부터 수원지역의 시민활동가들이 만나 5~6차례 회의를 거쳐 ‘필동 임면수 선생 탄생 150주년 기념사업회’를 출범하기로 뜻을 모은 바 있다.

필동 임면수 선생(1874년~1930년)은 근대수원의 대표적인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 시기 삼일학교를 설립하고 국채보상 등 수원지역 애국운동을 이끌었다.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1912년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 분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부민단 결사대로 독립항쟁의 최전선에서 싸웠다.

3.1운동 이후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21년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평양감옥에 투옥됐고 고문 후유증으로 1930년 수원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임면수선생 연보]

임면수(林勉洙) 본관 나주, 호는 필동(必東), 1874-1930

-1874년 6월 13일 수원면 매향동에서 출생

-1898년 (당 25세) 서울 상동 기독교 감리교회 전덕기 목사 만남. 애국선각자들과 교류하면서 상동 청년학원에서 수업함. 양잠학교, 측량학교, 일어학교 등에서 신학문 흡수에 노력함.

-1903년 (당 29세) 수원 북수리 예배당(현 종로교회)에 삼일학교, 삼일여학교 설립함(이하영, 나중석 이성의, 최익한, 홍건표, 차유순, 김제구) 이후 교감, 교장 역임.

-1907년 (당 33세) 국채보상운동 전개함(이하영, 김제구 등과 함께)

-1910년 (당 36세) 신민회 경기도 대표로 활동 중 개인의 재산을 삼일여학교(현 매향중고) 부지로 희사하고 서간도 환인현으로 망명함.

-1911년 (당 37세) 신흥무관학교 분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함.

-1916년 (당 42세) 통화현에서 부민단 결사대에서 활동함.

-1921년 (당 47세) 길림성에서 체포, 평양감옥 수감,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됨. 수원으로 귀향.

-1923년 (당 49세) 건강이 다소 회복되어 거동할 수 있음에 삼일학교를 맡아 어렵게 운영하던 중 동지를 규합하고 기금을 모아 아담스기념관을 신축함에 직접 감독관이 되어 건축에 참여하고, 기념관 머리돌에 삼일학교 약사를 기록하고 비치함.

-1930년 11월 29일 (당 56세) 수원에서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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