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 찾는 광교산행길은 토끼재-시루봉-노루목-억새밭-통신대-통신대 헬기장-상광교버스종점이다.

종로에서부터 수원천과 광교저수지 수변길을 따라 상광교 버스종점까지 차를 타지 않고 걷기 때문에 꽤 먼 거리다. 돌아오는 길도 걷는다. 광교저수지 상류에 내가 좋아하는 동네 아우의 보리밥집 자선농원이 있어 청국장에 보리밥 막걸리 한 병 먹고 오는 길은 즐겁다. 이집에서 만들어 파는 휴동막걸리는 옛 맛이 난다.

얼마 전에도 그 길을 따라 광교산을 내려왔다. 통신대 헬기장 아래엔 몇 년 전 산불이 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가슴 아프다. 들리는 얘기론 어떤 정신없는 이들이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먹다가 일으킨 산불이라고 한다. 하마터면 광교산과 백운산 모두와 군사시설까지 화마를 입을 뻔했다.

그 산불 발화지점에 이른바 ‘수원천 발원지’라는 게 있다. 지금은 물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발원지!

사실은 지정 당시에도 물이 나오는 곳이 아니었다. 장마철에나 물이 조금 고이는 수준이랄까.

수원시는 2013년 3월 23일 이곳에 ‘수원천 발원지’ 표지판을 설치했다. 수원시장과 시민단체 관계자들,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은 이날 ‘세계 물의 날’을 맞아 표지석 설치행사를 갖기도 했다.

2015년에 촬영한 이른바 수원천 발원지. 며칠 전 비가 왔음에도 물이 말라 있다. 파헤쳐 보아야 물기가 느껴졌다.(사진=김우영)
2015년에 촬영한 이른바 수원천 발원지. 며칠 전 비가 왔음에도 물이 말라 있다. 파헤쳐 보아야 물기가 느껴졌다.(사진=김우영)

시에 따르면 2012년 9월부터 12월까지 시민, 지리학자, 생태전문가, 공무원 등으로 이른바 ‘시민·전문가탐사단’을 구성해 광교산 계곡에 대한 생태탐사를 진행해 왔다. 그리고 이곳이 수원천 발원지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계곡의 형태, 물이 흐른 흔적, 물이 솟아나는 지점 등에 대한 내부검토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두 지점 모두 나름대로 발원지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발원지의 학술적 요건인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지점, 물줄기의 시작점, 산술적으로 물줄기의 가장 긴 구간 등을 충족한 것이란 설명도 붙였다.

그런데 이곳은 당시부터 감히 ‘발원지’라고 할 만한 물이 없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왜 그처럼 쫓기듯이 서둘러 확정발표하고 표지석까지 세웠는가 하는 점이다. 수원천 발원지는 전기한 ‘시민·전문가탐사단’이 말한 ‘발원지의 학술적 요건인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지점, 물줄기의 시작점...’ 이런 조건들과 크게 어긋난다.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미약 절터 약수터. (사진=김우영)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미약 절터 약수터. (사진=김우영)

발원지 표지석이 세워진 지 2년 뒤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한 신문 사설에 썼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발원지를 정했는지 모른다. 이른바 수원천 발원지라는 곳은 상광교동 버스종점에서 통신대 길로 걷기 시작하여 2㎞쯤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지난 2012년 9월부터 12월까지 탐사한 결과라고 한다. 이곳이 물줄기가 가장 긴 구간으로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2013년 3월 물의 날 기념식과 함께 선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원천 발원지라는 표지판도 세워놓고 입구에 솟대도 세워 놓았다. 그러나 이곳은 장마철을 제외하곤 대부분 말라 있다. 인공적으로 땅을 파내고 돌을 쌓아 놓기까지 했지만 물은 지표를 통해 하류로 흘러내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하면 건수다.”

이와 관련해 이대규 시인은 할 말이 많다. 이대규 시인은 수원문인협회 회원으로서 수원시의 시민기자로도 활동했다. 특히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광교산행을 했던 분으로써 가끔 산에서 내려와 막걸리를 한잔씩 나누기도 한다.

그는 “발원지는 가뭄에도 물이 솟고, 물기가 마르지 않아야 한다”면서 ‘절터 약수터’라고 불리는 미약절터 약수터에 발원지 표석을 설치해서 재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교산의 많은 골짜기들 중에 이처럼 높은 지대에서 물이 그치지 않고 흘러 나오는 곳은 유일하게 이 곳 뿐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촬영한 이른바 수원천 발원지 골짜기. 물이 흐른 흔적이 없다. (사진=김우영)
지난해 촬영한 이른바 수원천 발원지 골짜기. 물이 흐른 흔적이 없다. (사진=김우영)

당시 발원지 찾기를 했던 이들도 미약사 절터 약수터를 고민했던 듯싶다. 그리하여 이곳에 ‘문화적발원지’라는 이상한 명칭을 갖다 붙이기도 했다.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에서도 2000년 8월 수원천 발원지를 찾아 광교산 골짜기를 뒤진 적이 있다. 회원 30여명이 3개 팀으로 나눠 물줄기가 시작되는 큰 골짜기를 답사했다. 당연히 현재 발원지 안내판이 붙어 있는 곳도 포함됐다. 그러나 결론은 아니었다. 물이 없었다. 그 나마 절터 약수터라고 불리는 미약사지 약수터가 가장 조건에 근접했다.

수원시 관계자가 현장을 찾아가보길 권한다. 그리고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과 현장조사를 통해 ‘물이 없는 수원천 발원지’를 해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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