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의 아스팔트 거리에 사는 우리가 잘 모를 수밖에 없고 일상사에 바빠 관심을 가지기도 어렵겠지만, 겨울과 봄의 기운이 서로 다투면서도 어울리는 이 시기에도 대자연의 운행에 따라 산에서 산꽃들이 소리 없이 피어난다. 작년 수리산에 이어 지난달 28일에 야생화 탐화가 야천(野泉)을 위시하여, 시정의 애욕에 초연한 자영업자와 원칙과 의리로 종사하는 로펌 임원, 방범 활동을 지원해 지속하는 전직 장군 등 다섯 고교동기들은 성남 금토동에서 이수봉 방향으로 올라가 그 아래 산록에서 변산바람꽃을 심방하였다. 작은 돌 아래 수북한 묵은 낙엽더미를 제치고 피어나, 한기(寒氣) 서린 미풍에 곱고 가녀리게 흔들리던 그 꽃, 부끄럽게 연두 눈 뜨며 반색하는 듯한 그 꽃을 보며 우리는 백일몽 같기도 한 조우와 행운에 감사하였었다. 그 여운이 소진되지 않던 지난 주 14일에는 복수초를 만나러 사정에 따라 야천과 둘이서 다시 청계산으로 갔다.   

 시내 주변 사라진 길을 찾아 오르면서 이 산이 왜 청계산인지 거듭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성남 옛골에서 매봉 방향으로 올랐는데, 이 골짜기에도 작지만 단아한 시내가 길게 흐르고 있었고, 폭포들도 있었다. 선녀폭포에 이르기 직전, 갑자기 귀로 가득 흘러드는 맑은 물소리에 온몸이 청량해졌다. 다가가면서 살펴본 그 정경은 바위를 낀 굴곡 물길들과 직하 물줄기까지 갖추고 있어 소국(小局)이지만 고아하고 쾌적한 장관. 그 아래엔 옹달샘 연담(淵潭)도 있었는데, 고인 물이 투명하고 담박해 시선을 담그자 즉시 마음도 맑아졌다. 이런 폭포를 그 일부로 하는 시내를 거느리기도 하여 이 산을 ‘청계산(淸溪山)’이라 했을 것이다. 우리는 떠나기 어려워 그곳에서 한참 앉아 쉬었다. 이백(李白 : 701-762)의 유명한 「산중문답(山中問答」과 그 ‘별유천지(別有天地)’가 연상되었다.  

 

問余何意栖碧山(문여하의서벽산) : 푸른 산에 왜 사냐고 내게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 웃음으로 대답하고 마음 절로 한가로워라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 복사꽃 흐르는 강물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 여기는 별천지 인간 세상 아니어라

                                                          - 유병례 역 

 

 이 시는 오늘 날에도 널리 읽힌다. 이백의 불후 명성에 기인하기보다는 체제를 넘어 세대를 이어 사람들이 여전히 공명하면서 일시나마 자신을 의탁할 수 있어서. 이해와 공명의 사슬에 매여 있고 끝 모를 그 지속과 그 결과에 결국 유감스러워 할 우리에게, 이 시는 우리 무의식에 잠재된 향수 비슷한 안도의 정서를 일으킨다. 셋째 행의 ‘桃花流水(도화유수)’로 알 수 있듯, 넷째 행의 ‘別有天地(별유천지)’, 즉 별천지(別天地)는 모든 시대에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향의 하나이다. ‘도화유수’는 중국 동진의 도연명(陶淵明 : 365-427)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창안한 선경(仙境) 탐색 모티프. 작중에서 시내 위로 복숭아꽃잎이 붉게 분분 휘날리는 그 숲이 이어지고, 그 끝에서 어부는 한 산을 만나는데, 그 산의 동굴은 선경으로 가는 비밀 통로이다. 도연명은 동진(東晉)의 부패와 혼란에 실망하여 벼슬을 버린 지조(志操) 이상으로 이상향을 염원하였다고 하겠다.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은 그 도화유수모티프를 활용한 시이다. 그러니까 이 시의 배경은 도연명의 그 지취와 「도화원기(桃花源記)」의 선경. 이백은 이 시를 당 현종의 양귀비 조정에서 환멸을 겪다가 추방된 746년 이후부터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난 755년 사이에 쓰지 않았나 한다. ‘별유천지(別有天地)’라고 한 작중 산의 실제 모델도 이 시기에 쓴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의 ‘相看兩不厭(상간양불염) : 서로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경정산(敬亭山)’이거나,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 직각으로 내리꽂히는 삼천 척 폭포 물줄기’ 운운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의 ‘여산(廬山)’아닐까 한다. 아무튼 첫 행 ‘問余何意栖碧山’과 둘째 행 ‘笑而不答心自閑’과 그 행간에는 권력과 인심의 부조리와 부패를 혐오하는 정서뿐만 아니라 별유천지 이상국가를 기대하는 저의도 깊어, 둘을 같은 비중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안사의 난중에 이백은 영왕(永王) 이린(李璘)이 주도한 장강 남부의 새 정부 수립에 참여하기도 하였는데[이도 좌절], 이 후속 사행에서도 「산중문답(山中問答」의 두 면목을 살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 또한 현실에 거듭 실망하면서도 우리의 세계가 도연명과 이백의 선경처럼 이상화되기를 못내 바라지 않는가.  

 참 언급이 늦어졌는데, 복수초(福壽草)는 선경에 잘 어울리는 화초. 주지되어 있듯 선경은 청정하면서 행복과 장수도 가능한 유토피아. 그런데 그날 우리는, 눈과 얼음을 뚫고 꽃이 핀다고 하여 ‘설연화(雪蓮花)’ ‘어름새꽃’ ‘눈새기꽃’이라 불리기도 하며, 이름 그대로 행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복수초를 만나지 못 하였다. 마침내 그 서식지에 도착하여 살피고 살폈으나, 마침내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미안해서 괜찮다고 하여도 여전히 미안한 시선으로 꽤 오래 탐사하던 야천. 그래서 그대의 심정을 대신 읊겠다며 다음과 같이 내 심정도 섞어 그만 중얼거리게 되었다. 청계산을 내려와 수상한 깃발도 펄럭이는 4.10총선의 평지에 이를 무렵에 미당 선생의 「선운사 동구」 풍으로. 

 ‘청계산 골짜기로/청계산 복수초를 보러 갔더니/복수초는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선녀폭포 선녀의 선율(仙律) 가락에/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그것도 눈 반짝이며 남았습디다’

 사족 : 다음날에 작년에 촬영한 복수초(福壽草) 사진을 야천은 동기 카톡에 올렸다. 한참 감상하다가 문득 다음과 같은 답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맙게 즐감하였네. 이제 보니 낙엽 모두 지고 북풍한설 몰아칠 때부터 산록의 저 먼 땅속 끝에서 해를 향해 줄기차게 솟아오른 용감한 황금꽃이로군.” 독자 여러분, 인터넷 야생화 사이트에, 눈부셔 눈 감다가 더 주시하게 되는 복수초, 그 사진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번 감상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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