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개를 좋아했던 나는 몇 년 전 우연히 입양한 삽살개 한 쌍을 기른 적이 있다. 진돗개만 알고 있었는데 그에 못지않은 우리나라 토종개라는 삽살개를 처음 보고는 털복숭이의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가 새끼를 낳았는데 무려 한번에 7~8마리씩이나 낳아 참으로 난감했었다. 젖을 떼기 전까지는 어미가 변을 다 없앴는데 사료를 먹기 시작하고는 무지막지한 10마리의 변을 치우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서 기르니 남에게 맡기지도 못하고 기꺼이 수고를 감내해야 했으며, 매일같이 운동을 시키는 일도 또한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의 아저씨가 야간 일을 마치고 낮에 퇴근해 잠을 자야 하는데 개들이 시끄럽게 구니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는 하소연을 해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강아지들은 사람 인기척만 나면 짖어대는데 기다리고 있다가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곤란했다. 그러고 보니 절에 오시는 많은 신도님들 중에 개를 싫어하는 분들도 있었을 텐데 스님이 직접 기른다고 하니 뭐라고 말도 못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내린 결론은 모든 개들을 다른 사람에게 분양해 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분양하고 오는 길에 문득 얼마 전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생각났다. 스님께서 선물 받으신 귀한 난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를 담은 내용이 있었는데, 나의 입장도 바로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아무리 예쁜 강아지라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어찌 보면 그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과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사랑스러운 모든 것들을 아끼고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모든 소유에는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만 하는 현실을 때때로 잊는 것 같다. 마음 한 번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모든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원효스님께서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을 마시고 느꼈던 것이 바로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씀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모두가 예외 없이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의미다.

아무리 사랑스런 삽살개라고 할지라도 내가 꼭 길러야 하는 법은 없다. 누가 기르던지 삽살개의 사랑스러움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 바로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시려고 했던 ‘무소유’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불교에서의 ‘무소유’란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집착이나 욕심을 버린 자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바람 저 바람 많이도 불었던 지방선거가 큰 탈 없이 끝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는데, 무엇보다 그 누구의 일방적인 독주도 바라지 않는 국민의 염원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서로 어느 정도의 견제가 있어야 자만하지 않고 본연의 임무를 열심히 할 텐데, 한 쪽의 일방적인 독주체제 속에서 지나친 매너리즘과 부패의 나락에 빠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보다 못한 국민이 더 이상의 자만과 독선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선거였다.

다수당의 오만함으로 밀어 붙였던 대다수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정부의 정책들이 이제는 제대로 평가받고 그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이 갖는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도대체가 그런 국민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언론의 보도를 보면 정부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는 듯이 보인다. 허수가 많았던 여론조사의 방법론에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50%를 넘는다는 이상한 결과만은 꼭 믿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그들의 모습이 서글프다.

정치란 결국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국민이 싫어하고 원치 않는 정책은 반드시 폐기돼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모든 상황을 절묘하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소속정당을 위한 것으로 해석하는 놀라운 재주가 있다.

사실상 패배했다는 겸허한 마음을 갖겠다는 어느 시장은 며칠 새 마음이 바뀌었는지 특정지역의 몰표 때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가 말했던 겸허함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단지 마음 한 번 바꾸면 될 텐데. 마음자리 살짝 옆으로 비켜주면 될 텐데. 나 아니면 안 되고, 나만 옳다는 아집을 버리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텐데. 이런 아쉬움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언론에서 보이는 모습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출발을 맞이하는 당선자들에게 부탁을 하고 싶다. 선거 때 갖고 있었던 그 마음을 꼭 간직해 주기를 바란다. 때론 나태해 지고 때로 귀찮아 질 때, 그 마음을 다시 꺼내 살펴보기를 바란다. 선거 때만 국민을 섬기는 후보자가 아니라 임기 내내 언제나 국민이 최우선이라는 당연한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이 모든 국민의 행복을 약속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당신이 꿈꾸었던 모든 일에 대한 성공과 실패는 바로 당신이 마음먹기에 달려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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