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의 한 골목길에 터키군이 건립한 앙카라고아원에 대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전 수원시의원이 6·25 전쟁 당시 터키군이 서둔동에 설립했던 앙카라고아원을 기념하는 공간 조성에 나서 화제다. 제8대 수원시의원이자 전국군용기피해주민연합회 부회장이기도 한 이종필(탑동 거주) 씨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터키의 한국사랑을 기억하고, 이곳을 양국간 문화 공유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45-9번지에는 한국과 터키의 국기가 새겨진 기념비가 외롭게 서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도 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취재진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볼 뿐,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기념비는 그렇게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앙카라고아원은 이 기념비에 새겨진 것처럼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5월 건립됐다. 당시 서둔동 일대는 전쟁을 피해 내려온 이북 출신의 피난민이 주류를 이뤘다. 피난길에 부모의 손을 놓친 아이들은 이 일대에 주둔하던 터키군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터키군이 주는 빵과 밥을 먹으며 지냈다. 터키군이 어디선가 공수해 온 읽을 수조차 없는 글자가 새겨진 옷을 입었다. 640여명의 고아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가건물에 아무렇게나 살았다. 3평 정도의 공간에 대여섯명이 포개져 잠을 잤다.

이북에서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피난을 떠났던 김창집(63)씨도 이곳에서 꼬박 1년을 보냈다. 밥은 보리와 쌀이 섞인 혼식을 먹었고, 대부분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었지만, 더러는 맞지 않는 군복을 줄여 입은 아이들도 있었다.

김씨는 “당시는 고아원에 거주하는 아이들이나 부모들과 함께 집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이나 모두 먹을 것 없고 입을 것 없었던 것은 비슷했다”며 “그래도 터키군의 도움으로 먹고 자는 걱정은 없었다. 대우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터키군은 자신들의 수도인 앙카라에서 이름을 딴 앙카라고아원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일요일이면 대형 살수차를 동원해 아이들의 목욕도 책임졌다. 소질이 있는 아이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지원했다.

그러나 아무리 고아원이 좋다하더라도 부모의 사랑만한 곳이 있으랴. 일부 정에 굶주린 아이들은 밤낮으로 도주를 벌였고, 고아원장은 특단의 대책으로 대여섯명씩 짝을 지어줬다. 아이들끼리 서로를 감시하고 한 명이 도망을 치면 나머지는 잡으러 다니던 웃지 못 할 촌극도 벌어졌다.

1952년부터 1966년까지 14년 동안 운영되던 앙카라고아원은 터키 잔류중대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해체됐다. 고등학생에서부터 한두 살 배기 갓난아이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민족상잔의 비극을 고스란히 짊어진 앙카라고아원도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이 됐다.

간이 건축물에서 포개 잠을 자던 고아들은 어느덧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됐다.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이들은 고아원 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를 기념할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되길 바랐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공원조성 계획은 무산이 됐다.

이후 사연을 알게 된 이종필 전 의원이 개인적으로 터키대사관을 찾아다니면서 이 일대에 양국간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달 20일 염태영 수원시장이 서둔동을 찾을 당시 공원 조성을 검토해 줄 것을 요구했다”며 “이에 염시장이 현장확인 등 조사 후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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