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년 겨울, 조선을 침공했던 청(淸)나라는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고 철군하면서 명나라 출신의 항장(降將) 공유덕(孔有德)을 수군대장으로 삼아 조선에 남게 했다. 그는 영유현에 주둔하면서 가도(椵島)를 공격할 참이었다. 영유현령은 김영철을 오랑캐 군영에 보내 말을 전하게 했다. 그런데 이 때 오랑캐군의 한 장수가 김영철을 알아보고 낚아채며 눈을 부라렸다. 

"이 놈은 우리 숙부 집의 종이다. 말을 훔쳐 도망가서 우리 숙부가 늘 이를 심히 분하게 여겼다. 이제 내가 이 놈을 데리고 가겠다."

현령은 입장이 난처해졌다. 고민 끝에 자신이 타던 말을 그 오랑캐 장수에게 내줘 아라나에게 대신 돌려주게 하고 그에게도 다른 물건을 선물로 주었다. 그 덕분에 영철도 풀려날 수 있었다. 얼마 뒤에 현령은 결국 그 말값을 받아갔다.

​경진년(1640.인조18년)에 청나라가 개주(蓋州)를 공격하기 위해 조선에 파병을 요청했다. 상장(上將) 임경업(林慶業)장군은 영철이 만주어와 한어에 밝으며 명(明).청(淸)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다는 말을 듣고 영철을 불러 이야기를 나눠보고 크게 기뻐했다. 이 해 4월 수군 5천명과 군함을 거느리고 개주 앞바다에 도착했다. 세 나라 전함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임장군은 몰래 야음을 틈 타 영철로 하여금 급수병 2명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명나라 군영으로 가 서찰을 전하게 했다. 서찰의 내용은 이러했다.

​"오랑캐가 우리 조선을 침범했을 때 군세가 약해 대적하지 못해서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명나라의 은혜를 어찌 감히 잊겠습니까? 내일 싸움에서 우리 조선군은 실탄이 없는 공포탄을 쏘고 명나라 군도 화살촉을 제거한 화살을 쏘며 어울려 싸우다가 얼마쯤 시간이 경과한 뒤 우리가 고의로 포위를 당해 항복할 것입니다. 그런 뒤 힙을 합쳐 오랑캐를 격파하면 패배한 오랑캐군은 한 명의 병사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명나라 장수는 편지를 받고 크게 기뻐했다. 영철에게 은 30냥과 청포 20필을 내려주고 답서를 써줘 돌려보냈다.

​바로 그 때였다. 불이 환히 밝혀진 가운데 한 사람이 튀어 나와 영철의 손을 잡으며 흥분된 어조로 나지막히 소리쳤다.

​"친구가 어떻게 여길 왔는가?"

​영철이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니 거기엔 떡하니 전유년이 서 있었다. 너무나 놀랍고 기쁜 나머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곧바로 얼싸안고 처자식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는 청포 20필을 유년에게 주면서 "돌아가거든 이걸 내 처자식에게 전해주게."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유년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돌아와 배를 대니 날이 밝았다.

​영철이 명나라 장수의 답신을 임 장군에게 받쳤다. 미처 답신을 뜯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두 명의 오랑캐가 말을 달려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임 장군은 잽싸게 그 편지를 감췄다. 이들은 배에 오르자 다짜고짜 임 장군의 목을 조르며 "너희 조선군의 작은 배가 적의 군영으로부터 오는 것을 봤는데, 이는 필시 적과 내통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을러대며 임 장군에게 옷과 신발을 벗으라고 위협했다. 이어 배와 병사들의 옷과 군장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오랑캐들은 두 명의 병사가 배에 있는 것을 보자 곧바로 이들을 붙잡아 힐문하면서 "급수병들이 간 것이로구나"라며 노하여 임 장군에게 이들을 참수하라고 윽박질렀다. 임 장군이 견디다 못해 눈짓으로 군관에게 이들 2명의 병사를 다른 섬으로 데려가 참수하라고 지시했다. 군관은 즉시 이들을 참수하는 시늉을 했으나 실은 칼등으로 이들의 코를 쳐서 피가 나오게 해 그 피를 칼에 묻혀 돌아와 오랑캐에게 보였다. 오랑캐들은 그제서야 돌아갔다.

​이날 명나라군과 어울려 싸움이 벌어졌다. 명나라군이 진격해 조선군을 포위했다. 조선군은 탄약을 뺀 채 총을 쏘았으며, 명나라 군사들은 화살촉이 제거된 화살을 쏘아댔다. 전투는 한참동안 계속돼 두 나라 군사들은 3차례나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명나라 군사들이 이 와중에 조선 전함에 쇠갈고리를 걸어 끌어당기자 쌍방간 사전 묵계를 미처 알지 못한 일부 조선 군사들이 전세가 불리하다고 판단, 명나라 군을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이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놀란 명나라군은 즉각 포위를 풀고 후퇴했다. 7월이 돼서야 조선군과 명나라군 사이의 지리한 싸움이 끝났다. 청나라는 또 임 장군에게 정예병을 뽑아 금주(錦州)에 가 진주토록 했고, 겨울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신사년(1641.인조19년)엔 평안도 병사 유림(柳琳)장군이 거느린 조선군이 금주로 갔다. 영철도 따라갔다. 군중의 일을 의논하러 유장군을 찾아온 아라나가 얄궂게도 영철을 발견하고는 몹시 심하게 꾸짖었다.

"나는 너에게 세번이나 은혜를 베풀었는데, (배신하고 도망가다니) 너는 마땅히 참수돼야 한다. 내가 죽음에 처한 너를 살려준 게 첫번째요, 네가 두 번이나 도망쳤지만 죽이지 않고 풀어준 게 두번째요, 내 죽은 동생의 처를 너에게 아내로 줘 건주의 집안 살림을 맡긴 게 세번째다. 또한 너는 용서받기 어려운 죄를 지은 게 세 가지다. 너는 목숨을 살려준 은덕과 어루만져 길러준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두 번이나 도망간 것이 그 첫번째 죄요, 너에게 말을 기르도록 했을 때 나는 진실로 너에게 부탁했는데, 너는 도리어 한족(漢族)놈들과 짜고 나를 배신한 게 두번째 죄다. 그리고 네가 도망치면서 나의 천리마까지 도둑질해 간 게 세번째 죄다. 나는 너를 잃은 게 한(恨)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 천리마를 잃은 게 억울해 지금까지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반드시 너를 목벨 것이다."

말을 마친 아라나는 수하 기병을 불러 영철을 서둘러 묶도록 했다. 겁에 질린 영철은 큰 소리로 살려닽라고 간청했다.

"말을 훔쳐 도망친 죄는 저에게 있지 않고, 실은 저 한인 놈들이 한 짓입니다. 당시 그들의 계책을 따르지 않았다면, 저들 아홉명은 저 하나 칼로 베는 건 손 한 번 뒤집는 것처럼 쉬웠을 것입니다. 부디 주공께서는 이를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아라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유 장군이 마지못해 끼어들어 아라나를 설득했다.

"영철에게 분명 죄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이 이미 그를 살려줬는데, 지금 와서 죽인다면, 공이 베푼 은덕이 끝을 맺지 못하고 맙니다. 내가 영철에게 무겁게 속죄하여 사람 살리기를 좋아하는 공의 은덕을 온전히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고운 남초(南草.담배) 200근으로 대속하게 했다.

이 때 영철의 장남인 득북(得北)이 오랑캐 군중에 와 있었다. 아라나는 영철에게 "너는 어찌 네 자식을 보고싶어 하지 않느냐?"며 당장 득북을 불러 오게 했다. 부자는 서로 만나 부둥켜 안고 서럽게 울었다. 헤어진 지 16년 만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장병들이 하나같이 눈시울을 붉히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이후로 득북은 매일같이 술과 음식, 과일 등을 잔뜩 싸가지고 부친인 영철을 찾아왔다. 그 때마다 영철은 먼저 맛있는 과일들을 유 장군께 갖다 드린 뒤 여러 사람들과 음식과 술을 나눠 먹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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