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doesn’t register with me‘  직역하면 ‘나이는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 이지만 우리나라에선  "나도 내 나이를 모른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0세 나이와 건강을 우려한 질문에 답한 조크다.

나이로 능력을 재단한다는 것은 차별적인 발상이라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기대 수명 120세 시대다. 장수(長壽)가 ‘축복’이냐 ‘저주’냐 하는 논란도 있지만 노인과 시니어들이 넘쳐난다. 그러면서 청년 세대와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두산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Age, Age, Age - 나이, 세대, 시대’란 강좌에서 교수들이 한 말 들을 정리한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글이 생각난다.

“사람의 삶에서 나이는 계속해서 화두다. 어떤 시기는 나이듦을 기다리고 어떤 시기는 도망치고 싶다. 나이는 시간이라는 객관적인 기준과 경험이라는 주관적인 기준이 더해지는 탓에 복잡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는 ‘노화’와 ‘세대’로 이어지고, ‘인구’, ‘돌봄’, ‘테크놀러지’로 확장된다. 그 테두리에 ‘갈등’과 ‘사회문제’가 놓일 수밖에 없다. 이런 키워드를 토대로 나이를 생각하며 지혜를 모색하고자 한다. 그 지혜는 다른 나이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는 것, 한 사람의 일생이 펼쳐진 매년의 나이를 일련의 호흡으로 어루만지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이 시대 시니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들이 아닌가 생각돼서 인용해 봤다.

그런가 하면 최근 유난히 노인들과 시니어 관련 프로그램이나 기획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자체 참여도 부쩍 늘었다. 해당자들을 위한 기획일 때도 있고, 당사자들이 직접 나설 때도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뒷방 늙은이’ 취급하던 사회가 ‘경험을 가진 자원이자 동력’으로의 인식이 전환되는 것같아 긍정적이고 반갑다.

덕분에 노인 시니어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50~60,70~80으로 대변되던 10년 주기 세대 나이 분류도 건중년(65~70)이니, 유엔이 정한 나이 세대니 하는 식으로 진화했다.

몸과 맘이 모두 별 구분 없다 해서 나이 45~65 분류법도 나왔다. 20년은 세대차도 아니라는 뜻이라니 변한 세상을 실감한다. 수명이 길어져 18~65세를 묶어 청년이라는 주장도 흔하다.

이 모든 것이 늙지 않는, 아니 늙지 않으려는 시대의 소산물이다.

물론 늘어난 기대수명이 저변에 깔린 탓이지만 시니어와 노인들이 젊은 동력을 유지하려 애쓰는 것은 긍정적이다.

최근 ‘네버랜드 신드롬’이란 말이 유행이다. 젊은 인생을 추구하는 모습을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다.

다시말해 나이가 들기를 거부하고 계속 젊게 지내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심리를 일컫는다. 과거를 추억하며 어른이면서 미숙아로 남아 현실을 도피한다는 ‘피터팬 증후군’과 상반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외친 말이다.

연륜과 지혜를 갖춘 노인이지만 연속적 혐오를 유발하면 그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뜻이다. 장수시대 이해는 된다.

하지만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을 타파 하려고 ‘아우디(아줌마의 우정 디질 때까지 가자)’와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세대)을 외치는 시니어 노인들이 늘어날수록 ‘네버랜드 신드롬’은 더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팔팔한 80대, 골골한 30대란 말도 나오고 그 속에서 장수가 ‘축복’이냐 ‘저주’냐의 답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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