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정당이 정책 홍보나 정치 현안에 관련된 발언을 현수막에 써 설치하여도 「옥외광고법」에 따른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고 있다. 상업 현수막은 신고·허가·게시장소 등에서 규제받으나, 정당의 현수막은 신고와 허가가 필요 없고, 수량과 규격도 제한 없으며, 다만 게시 기간을 15일 이내로 제한하는 대통령령 규제만 있다. 게다가 지난 8월 1일부터 공직선거법의 거리 홍보물 제한 조항도 효력을 상실하면서 8월 1일부터 후보자가 언제든 선거 현수막이나 인쇄물을 게시하고 배부할 수 있게 됐다. 이미 우리는 그간 그런 현수막들에 지쳤는데, 우리의 원성을 언론에서 여러 차례 대변하며 정치인들에게 경고하였는데도 별로 변화가 없다. 그래서 현실의 그 부조리가 반영된 다음 시를 우리가 만나는 것은 필연이다.  

 

바람이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집요하게

멈추지 않아서

불안해서, 눈 돌릴 수 없었다

 

발목을 잡힌 새의 날개처럼 퍼드덕거렸다

 

길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사람들의 표정과 상관없이 봄날의 황사처럼, 흩날리는 검은 비닐봉지처럼 아우성치고 있었다 어쨌거나 제 몫은 해야겠다는 듯

 

금지와 유혹

폭로와 비아냥이 뒤섞인 

저 뻔뻔함이야말로 세상의 가장 비천한 몰골이 아니냐고

 

탓하기엔 너무 늦었다

 

소리가 소리를 잡아먹거나 먹히거나

밤낮없이 뒤엉키는 

이 바닥을 벗어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깊은 산속까지 따라 들어와 임산물 채취 금지, 뉴캐슬 분양이라고 제각각 악을 쓰는

고성방가, 도저히 당해 낼 재간이 없다

                                                         - 「플래카드」/신덕룡

 

 그렇다. 거리의 요지에 나붙은 플래카드 표어들의 대부분은 시민들에게 바르고 친절한 호소나 권유를 하지 않고 거칠고 무례하다. 시비를 떠나 그 메시지가 욕설 비슷하다면 우리는 불쾌해지기 쉽다. 상대에게 오물을 마구 뿌려 주변 사람들에게까지도 그 일부가 튀어도 방관하는 양상. 게다가 그 막말 독설 비방은 자세히 생각해보거나 배경과 맥락을 따져보면 일방 억지에 가깝고 심지어 교묘한 사실 왜곡에다 엉뚱한 문제에 연계를 시도한 조작에 가까운 도발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 거리에 마구 내걸리는 정당들의 정략(政略) 구호들에 이 시 화자와 같은 입장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호소력 짙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아니라, ‘시끄러워서 고막이 터질 듯 괴롭고 심란한 아우성’이다. 그런데 ‘소리가 소리를 잡아먹거나 먹히거나/밤낮없이 뒤엉키는/이 바닥을 벗어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전투구(泥田鬪狗) 난전(亂戰) 묘사와 탄식에 공감하면서도 좀 미흡한 심정이 된다. 보다 강력하게 탄핵하면서 그 ‘출구’도 제시해주었으면...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뻔뻔’ 무례한 플래카드의 언어에서 매번 겪는 불쾌와 실망을 화자가 그래도 완곡하게 희석하며 우리와 같은 자신의 과격한 반발을 스스로 제어한 품격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메시지를 만드는 정치 종사자들과 그런 메시지의 출현을 제어할 수 있으면서도 유불리(有不利)를 따지며 간과하는 듯한 국회의원들은 구호를 백안시하며 ‘봄날의 황사처럼, 흩날리는 검은 비닐봉지처럼 아우성치고 있었다’는 화자의 비하도 포함하여 ‘세상의 가장 비천한 몰골이 아니냐고//탓하기엔 너무 늦었다’란 지척(指斥)과 탄식의 혼류(混流)를 오히려 점잖은 말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생에 소홀하며 정쟁으로 날밤을 지새우는 근년 이래 정치 종사자들, 특히 국회의원들은 이런 측면에서도 시민의 의사와 울화를 무시할 것인가? 거리의 공해이자 적폐가 최근에 여론에 밀려 좀 자제되는 듯하지만, 사정에 따라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무슨 궐기처럼 야기될 것이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 시민들은 앞으로 또 무슨 험악한 메시지와 마주칠지 몰라 실로 당황스럽다. 시민을 행복하게 해야 할 의무, 그 의무가 존재 이유인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의사를 방치하고 관련 법규를 곧 개정하고 제정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위한 선동이냐?’는 항의에 직면할 것이다.(7연의 다른 사정은 차라리 검토를 생략한다)  

사족 : 우리 시민들은 이 시 화자의 의사에 내포된 대로, 제발 그리 정중하지는 않더라도 이 땅의 정치 언어가 품위와 격조가 있기를, 그리하여 비난과 증오의 부식이 아니라, 시민 앞에서 서로 수용하고 시정하는 동기가 되는 비평이기를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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