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같이 넓은 그리움

아귀들이 날카롭게 이빨 드러내며 해무처럼 퍼진다

거대한 숫자 군단을 무너뜨리려 츨정 출정

붉고 파란 군단을 맞아 전쟁을 치르러

 

욕망의 판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거대한 판들은 부딪히고 깨지고 흔들린다

진원지에서 여진은 계속되고 숫자들이 천장과 바닥을 뚫는다

살아 숨 쉬는 숫자의 쾌감

숨을 고르다 단번에 질주할 것

 

머니의 시간에 붙들린 머미처럼

기다리고 울부짖고 환호하고 휘둘린다

조급증을 앓는 J씨

누구나 뛰어드는 판에 적은 연봉을 핑계로

매주 소용되는 기찻삯이나 기름값이나 아이 간식비를 보태자고

사이버 객장 앞 불기둥이 치솟기를 기다린다

 

도약을 준비하는 아귀들

입을 벌린 채 모든 숫자를 받아먹을 태세다 

매일매일의 욕망 잔치

숫자의 출렁임을 빋아 내느라 휘청인다

생각하다 움직이고 움직이다 생각한다

알 수 없는 허공을 읽어야 하는 법

 

빛이 가득한 길 위로

꿈처럼 새 차와 집이 어른거리고

교차점 없는 교차점, 출구 없는 출구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매트릭스를 향해 달리는 

슬픈 질주 

한 판 생이 지각판 위를 달린다

 

숨이 가빠오고 심장 소리가 오르락내리락 시끄럽다

휘황한 전광판

마이너스 혹은 마이더스의 삶

 

떨어진 만큼의 빈약한 파이라든가

오른 만큼의 활력이라든가 의욕이라든가 성취라든가

 

알람이 울리고 알림이 오고

5%나 10%의 영혼을 털리거나 붉은 황홀경에 잠겨

망망한 푸른 바다 위

내리는 비처럼 오르는 수증기처럼 

뭔가 스펙터클한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날

적청의 군무 속에 숨겨진, 머미 브라운

                                 - 「머미 브라운」/주영중

 

 주식시장에서 돈 번 사람보다 잃은 사람이 훨씬 많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희망과 불안을 이마에 두르고 주식을 사고판다. 어쨌든 거의 필수 같은 경제행위라서? 아무래도 요행수를 포기할 수 없어서? 그래서인가 문외한의 헛소리일지 몰라도 하루 단위 매매의 결과가 궁금하다. 차익을 본 사람이 몇이고 차손을 본 사람은 몇이며, 그 금액은 도합 얼마씩인지. 이 정황을 다루는 리포트가 없는 것 같다. 의아하다. 왜 없나? 지난 경제개발 과정에서 우리는 통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역량을 길렀고, 이제 통계에 의거하여 기존 사업을 검증하고 사업 계획도 세우며, 국가기관으로 통계청이 있고, 많은 민간 통계조직도 활약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주식시장의 동향이 매일 과도할 정도로 분석되는데, 왜 그 정보만은? 그리고 주식에 투자해서 돈 벌어 기분이 어떠하고 계면쩍든 활기차든 어떻게 하겠다는 시를 읽고 싶은데(?), 단 한 번도 없고, 주식시장과 주식을 매매하는 사람들을 타매하는 화자의 목소리와 정조가 불투명한 이상한 공간에서 짙어지는 노을 같은 이 시를 만났다. 

 여기서 주식은 ‘도약을 준비하는 [아무리 먹어도 게걸스런] 아귀들’로, 주식시장은 ‘교차점 없는 교차점, 출구 없는 출구’가 있는 ‘알 수 없는 허공’으로 은유되고, 매매는 곧 ‘마이너스 혹은 마이더스’로 결정되며, ‘5%나 10%의 영혼을 털리거나 붉은 황홀경에 잠겨’도, 어느 쪽이든 결국 ‘적청(赤靑)의 군무(群舞)’, 즉, 손익의 널뛰는 등락 요동에 놀아나는 피체(被體)라고 한다. 그런데 그 ‘적청의 군무’도 허상이고 껍데기, 실체는 바로, ‘머미 브라운’이라고 종결하였다. 

 머미 브라운(mummy brown)은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가 된 죽은 사람의 유체를 위주로 붕대와 부장된 동물 사체를 갈아서 만든 갈색 안료’이다. 이 으시시한 염료는 유화(油畫)에 광택을 내려고 바르며, 방부제인 역청(瀝靑)이 흡착된 오래된 사체가 아니라면, 제조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갈색이고 심미성이 뛰어나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의 사체가 재료인 마성(魔性) 물질이다. 단순한 괴기를 넘어 인간의 도저한 영생 욕망을, 그리고 그 영원한 허망도 상징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면서도 그것으로 물감을 만들어 그림을 그렸고, 사람들은 그림을 감상하며 호기(好奇) 네크로필리아(시신‧유골 애착증) 도착 욕구로 의심되는 그 긴 이력을 지속하였다. ‘빛이 가득한 길’같은 ‘전광판’의 적청 휘황한 불빛은 그러니까 그 ‘머미 브라운’의 발광... 그러나 ‘누구나 뛰어드는 판’ 아니냐며 ‘적은 연봉을 핑계로’ ‘조급증을 앓는 J씨’, 이 시에서 다룬 주식시장의 부조리가 과장이라며 그 정황을 배척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도 혹시 그와 같은 사람이 아닌가 의아할 수 있다. ‘내리는 비’이든 ‘오르는 수증기’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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