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팔꿈치를 세우고 어스름한 도시를 걷고 있었다. 자신의 목을 조르는 자세로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걸음걸이와 행색을 보아 하니 이미 그렇게 몇 시간은 헤맨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은 누구보다도 절박해 보였다. 

 이봐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머리를 팔러 나왔어요.

 나는 당장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골똘히 그 대답을 곱씹어 보았다. 목을 조르면서 기이한 자세로 걷고 있는 것이, 머리의 상품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인 것 같았다. 

 머리를 판다고요? 누가 남의 머리를 산다고 그래요.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실없는 사람이군. 저기 안 보여요? 이 도시에 머리를 팔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사는 사람이 없다면 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저러고 있겠어요.

 나는 골목을 빠져나오는 수많은 인파를 바라보았으나, 그처럼 행색이 이상한 사람은, 그처럼 기이한 자세로 걷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팔이 저린 듯 팔꿈치를 두어 번 허공에 털어주고는, 다시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봐요, 당신이 머리를 팔고 나면 당신은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도 느낄 수도 없을 텐데 당신이 받는 대가가 무슨 소용이며, 기쁨이며 성취감이 무슨 소용인가요?

 그는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라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공에 침을 한번 뱉고는 하늘 높이 곧추세운 팔꿈치가 돛대라도 되는 것처럼 살랑거리며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고,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사라진 사람을 생각했다. 그의 말대로 머리를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면 그가 몇 시간이고 거리를 헤맬 이유가 없을 텐데... 머리를 사는 사람이 많은 것 이상으로 머리를 파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 수요공급의 불균형에 대한 생각이 나를 불현 듯 사로잡았다. 그런 불균형이라면 더욱이 그가 원하는 수준의 대가를 받기는 힘들 것인데, 참 딱한 일이군...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떠밀리며 걷고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강하게 툭 치고 지나갔다. 그는 분명히 웃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그의 얼굴을 도무지 기억할 수 없었다. 

                                                                       - 「이상한 사람」/임후 

 

 이 시를 읽으며 독자들은, 독행(讀行)이 무난하고 은근한 재미가 있으며, 사연과 정황 이해가 대체로 어렵지 않고 미묘한 난점들이 있지만 관심과 흥미를 위축시키지는 않는다고 느낄 것 같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는 아마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부각된 ‘이상한 사람’은 누구인가? 감상에서 마지막 문제일 수도 있고 숙려해볼 첫 문제일 수도 있다. ‘이상한 사람’은 머리를 팔려고 거리에서 ‘자신의 목을 조르는 자세로 뒤뚱뒤뚱 걷고’ 있는 사람인가. 그런가. 이 시를 재독하면 ‘그의 얼굴을 도무지 기억할 수 없었다’는 화자 ‘나’가 아닐까. 애써 머리를 팔아도 성취감을 0.1 그램도 느끼지 못할 사람은 거듭 말해 머리를 팔려는 ‘그’가 아니라 ‘그’를 못내 동정하는 화자인 듯하다. 참 딱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참 딱한 사람이란다는 관련 아이러니를 작중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팔려는 머리’를 급여나 대가를 지급받으려는 직능이나 용역 등 근로 제공, 즉 구직(求職)이나 그 유사한 양상의 점묘(點描)라고 보는 전제를 수용해야 한다. 

 화자는 못내 유감스러워한다. 머리를 사려는 사람이 적은 ‘수요공급의 불균형’, ‘그런 불균형이라면 더욱이 그가 원하는 수준의 대가를 받기는 힘들 것인데, 참 딱한 일이군...’이라고. 아니 이 사정이 딱하다고? 그렇다면 딱하다는 사람이 딱하다. 너무 새삼스럽지 않아서 그래서 화자 ‘나’가 ‘이상한 사람’. 게다가 ‘나는 골목을 빠져나오는 수많은 인파를 바라보았으나, 그처럼 행색이 이상한 사람은, 그처럼 기이한 자세로 걷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수많은 사람이 사실은 그렇게 걷고 있고 서로 알고도 있는데도 혼자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겉만 보고 그런 말을 정색하고 하다니, 그러니 ‘이상한 사람’일 수밖에. 그래서 ‘누군가 내 어깨를 강하게 툭 치고 지나갔다. 그는 분명히 웃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그의 얼굴을 도무지 기억할 수 없었다’는 상태는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가 웃었다고도 하였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반색이나 호감의 그것이 아니었으리. 조소도 아니었으리. 동정의 취지가 있었으리. 너도 나와 같은 부류야... 뭐 이런 하지 않은 말에 어울리는 웃음이었으리. 

 이상 추정은 강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각종 인력을 주요 물건으로 하는 시장을 배경으로 한다면 우리는 거의 같은 처지이고, 청춘의 한때에 우리는 유감스럽지 않게도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취업 여부를 떠나서 생계에 직면한 사람들, 특히 젊은 청춘들, 특히 빚진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이 시의 정황에 연계돼 떠오를 수 있다. ‘이봐요, 당신이 머리를 팔고 나면 당신은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도 느낄 수도 없을 텐데 당신이 받는 대가가 무슨 소용이며, 기쁨이며 성취감이 무슨 소용인가요?’란 ‘나’의 질문에,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라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공에 침을 한번 뱉’는 모습은 과장이면서도 과장이 아니다. 

 이 시는 대략 낯설지 않아진 시의 ‘낯설게 하기’를 원래대로 되돌린 사례가 아닐까 한다. 즉 정황이 낯설어도 그 진술의 시어들은 낯설지 않고 무리한 작위성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 이면의 실제 취지가 잘 병렬되고 있고, 아이러니들 또한 무난하게 드러나면서 긴장을 이어가고, 전체 이야기의 구성도 적절하여 독해에 편리와 재미를 고려한 시인의 배려가 돋보인다. 또 오래 반복된 이 시의 주제가 진부하지 않은 것은, ‘나는 당장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골똘히 그 대답을 곱씹어 보았다’는 ‘나’의 진솔한 표정과 태도일 것이다. 단순한 아니러니 이상을 구사하며 우리 사회의 기본문제를 다룬 이 시, 그래서 우리는 작중에서는 보이지 않는 교설 같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지도 거론해보아야 할까. 우리가 만약 작중 ‘나’라면, ‘그’나 ‘그’와 같은 사람에게 끝내는 서로 자신의 자신만의 얼굴을 짓자는 희망까지 내포한 웃음을 거리에서도 짓자는 소박하고도 힘나는 각성이 아닐까. 이상하지 않은 이상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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