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diaspora). ‘자의나 타의로 고토나 고국을 떠난 이주나 그 사람들의 삶’을 뜻하는 이 말은 재중조선족, 재일조선인, 재사할린조선인, 재중앙아시아고려인을 우선 연상하게 한다. 세계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디아스포라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가 없겠다. 현지의 문화에 순치되거나 현지의 문화와 융합하여 제3의 양식을 이루어냈다면 굳이 운운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역에서 집단과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정체성을 일부라도 지속하는 체제나 의지를 가졌다면 그 관련 텍스트도 고국과 왕래하는 현안으로 화제가 된다. 역대 우리 혈육들의 디아스포라는 거의 타의로 발생하였다. 19세기 말 빈민들의 북변 월경과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주요 이유이고, 세월이 꽤 흘렀으나 여전히 관련 작품의 정서는 밝지 않다. 그런데 다음 시는 다른 이유로도 밝지 않다.      

 

알마티의 새벽에 깨어나 듣는 휘파람새 소리

벌써 20분 동안 창가 포플러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듣다 보니 귀가 간지럽고 반복되는 음조가 있다 

사촌 누이 릴리의 합죽한 입을 닮은 휘파람

모든 노래는 과거에서 오고 

가지를 건너뛰며 멀어져 가는 게 귀로 보인다 

릴리와 나도 그렇게 멀어져간 적이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 때 처음 보자마자 사랑 비슷한 감정이 생겼다 

싱가포르 보테닉 가든이며 타슈켄트 촐수 시장이며 

페테르부르크 교외의 자작나무 숲을 한참 걸어 들어가

여고 동창생의 하숙집을 찾아갈 때도 우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릴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몰래 울었던 것 같다

알마티 결혼 궁전에서 신부 측 들러리로 사인을 하고 

시내를 자동차로 돌 때 난 옆 좌석에 앉아 

사랑 비슷한 불씨를 손바닥으로 비비듯 꺼버려야 했다 

여기까지 쓰는 동안에도 

휘파람새의 노래는 여전히 들려오고 

옆방에서 릴리 부부가 두런거리는 말이 얼핏 들린다 

집에 들어서면서 릴리의 남편 알레그가 내민 손을 잡았을 때 

불씨는 여전히 그 손으로 옮겨가 타고 있었다 

내게 남은 건 다만 휘파람새의 노래 

30년 전 자작나무 숲에서 내가 불었던 휘파람 

아무것도 시작된 건 없고

아무 것도 끝난 건 없다 

                                              - 「휘파람새의 노래」/정철훈

 

 이 시에서 화자는 먼저 30년 전 과거로 돌아가 그때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 제3국에서 ‘이산가족 상봉 때 처음 보자마자 사랑 비슷한 감정이 생겼’던 혼혈 사촌 릴리, 그녀가 결혼할 때 ‘몰래 울었던 것 같’고, ‘사랑 비슷한 불씨를 손바닥으로 비비듯 꺼버려야 했다.’ 

 하지만 현재 화자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또 와서 ‘릴리의 남편 알레그가 내민 손을 잡았을 때/불씨는 여전히 그 손으로 옮겨가 타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그동안 꺼졌다고 알았던 그 ‘불씨’가 살아있었다고 자각하다니. ‘불씨’는 추억된 감정일 수도 있겠는데, 화자는 자신의 의식 심층에서 늘 내재해 있던 감정으로 여긴다.  

 우리는 기존 디아스포라 시와 다른 분위기에 당황스럽지만, 곧 화자의 심정뿐만 아니라 ‘사랑 비슷한 감정’도 늦게 이전(移轉)된 그 ‘불씨’도 양해할 수 있다. 근친이더라도 매력 있는 이성에게서 우리는 ‘사랑 비슷한 감정’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감정은 지난 날 우리 시사에서 수차 출현하기도 하였다. 누이가 대상이거나 누이의 이야기를 하는 시들에서. 심지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의 화자, 누이를 묘사하는 그 태도에서도 희미하게나마 감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인가. 화자는 토로한다. ‘내게 남은 건 다만 휘파람새의 노래/30년 전 자작나무 숲에서 내가 불었던 휘파람/아무것도 시작된 건 없고/아무 것도 끝난 건 없다’. 알마티에 또 와 일찍 깨 ‘휘파람새의 노래’를 듣는 화자. 그 노래는 30년 전에 자신이 불었던 ‘휘파람’과 같고, ‘휘파람’과 ’휘파람새의 노래’의 메시지도 같다. ‘아무것도 시작된 건 없고/아무 것도 끝난 건 없다’. 

 대체 시작도 끝나지도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 ‘사랑 비슷한 감정’인가. 그럴 수 있겠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시와 함께 시집 『릴리와 들장미』에 실린 동명의 표제작에 등장하는, 같은 화자의 다음 진술을 살펴보자. “알마티 시립공동묘지 입구에서/조화를 사 들고 오솔길을 걸어갔다/그 방향이 내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이었다/울타리에 둘러싸인 묘지에 나무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어머니는 여기 가족 묘지에 묻혔어”/릴리는 무덤 주위에 들장미를 심었다/ … 그들에게는 육십 년 전 남한 출신의 망명자에게/시집 간 딸을 흙에 묻힌 채 돌려받은 것이었다/ … 한 사람이 더 들어갈 수 있는 가장자리에도/들장미가 심겨 있었다/나는 릴리에게 장미 한 송이 주지 못했지만/그 자리에 들어가 묻히고 싶었다”(「릴리와 들장미」 일부). ‘그 방향이 내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먼’ 이역, 그곳 현지인들의 묘역에 들장미 심기듯 ‘묻히고 싶었다’고 하였다. 이 심정은 아무래도 이상하고 과격하다. 

 그런데 대체 왜 화자는 그러고 싶었다는 것일까. 우리는 이제 이 시들이 실린 시집의 「시인의 말」을 읽어야 한다. “나는 이민자는 아니지만 어쩌다가 심정적 이민자가 되었다. 비록 한 나라에 붙박여 살고 있지만, 이 시대에 조국이나 모국, 혹은 모국어에 대한 개념은 매우 느슨하다. 차라리 어느 후미진 선술집, 성에 낀 유리창의 낙서들이 더 조국처럼 느껴진다. … 나는 릴리를 통해 혼혈과 이주, 망명과 불귀의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시집을 릴리와 릴리를 닮은 혼혈의 후손들에게 바친다.” 위 시들도 그 최선의 위로와 동정의 헌정이며, 한편 우리의 시선을 우리 혈연의 중앙아시아 디아스포라에서 ‘혼혈과 이주, 망명과 불귀의 삶’, 그러니까 우리가 꿈꾸기 어려운 낯선 삶으로 향도하려는 작품들이다. 이미 ‘30년 전 자작나무 숲에서 내가 불었던 휘파람’, ‘아무것도 시작된 건 없고/아무 것도 끝난 건 없다’는 토로는 아마 그 지향과 현실과의 괴리와, 그럼에도 여전한 그 지향을 탄식하는 언급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사족 : 2000년대부터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이주하여 고려인들의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었다. 그들에게도 우선 릴리 시집이 읽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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