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련다 나는 살련다 

바른 맘으로 살지 못하면 미쳐서도 살고 말련다

남의 입에서 세상의 입에서

사람 영혼의 목숨까지 끊으려는 비웃음의 살이

내 송장의 불쌍스런 그 꼴 위로

소낙비같이 내리쏟을지라도- 찟퍼부울지라도

나는 살련다 내 뜻대로 살련다

그래도 살 수 없다면- 

나는 제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벙어리의 붉은 울음 속에서라도 살고는 말련다

원한이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장마 진 냇물의 여울 속에 빠져서 나는 살련다

게서 팔과 다리를 허둥거리고

부끄럼 없이 몸살을 쳐보다

죽으면- 죽으면- 죽어서라도 살고는 말련다

                                                                             - 「독백」/이상화

 

 이 시는 죽은 사람의 노래다. 이미 죽은 사람이 ‘나는 살련다 내 뜻대로 살련다’고 하며, ‘그래도 살 수 없다면-/나는 제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벙어리의 붉은 울음 속에서라도 살고는 말련다’고 붉게 맹서하고, 또 ‘장마 진 냇물의 여울[세속의 거친 세파] 속’에서 위태롭게나마 살고 살며 그러다가도 ‘죽으면– 죽어서라도 살고는 말련다’고 거듭 삶에의 다짐을 어떤 굴복 없이 천명한다. 아니다. 아니다. 이 시는 죽을 사람이 죽기 직전에 분출한 노래다. 곧 닥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이 무한 절망의 고통에서 자신의 각오를 가없이 원통한 심정으로 토로한 유언의 노래이다.  

 어느 쪽인지 헤아리기 어려운 이 착종(錯綜)은 20년대 철자법으로 쓰인 원시를 오늘 철자법으로 옮기면서 발생한 서로 다른 시제(時制)에서 기인한 문제일 수 있지만, 이 시의 주제에 따라 시인이 의도한 모호한 혼란일 수 있다. 화자의 상황과 가해자의 만행(蠻行)이 너무나 잔혹하기에. 육신의 목숨 살해도 모자라, ‘영혼의 목숨까지 끊으려는 비웃음의 살(화살[죽창 등])’을 시신에 ‘소낙비같이 내리쏟’고, ‘찟퍼’붓는 무비(無比) 악독. 이 처참한 만행(蠻行)에 우리도 정신이 교란될 정도로 억울하고 분노로 미쳐버릴 지경. 시인은 그 도저한 참경(慘景)에 직핍하게 감정이입되어 이 시의 화자가 되었다. 삶의 의지로 절대 절망을 피력한 이 시의 화자는 1923년 9월 일본 간토대지진(關東大地震) 때 일인들의 집단 린치로 피살당한 6661 조선인 희생자들이다. 이상화(1901-1943)는 당시 동경 아테네프랑세어학원에서 유학하다가 극악한 학살 현장을 목격하였다.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시는 1923년 10월 26일 동아일보에 실렸는데, 그 100년 후인 2023년 10월 26일 저녁에 성남아트리움대극장에서 공연된 〈관동대지진 100년, 대표적 문학작품을 통한 진혼의 밤〉[초대손님 시인 정종배, 시인 이윤옥. 진행사회 작가 이진훈]에서 출현하였다. 공연을 주관한 랑코리아‧듀오아임은 「공연취지문」에서 이 상기(想起)의 공연이 “망각의 100년, … 우리 사회가 민족과 이념과 종교를 초월하여 보편적 생명 존엄의 가치를 함께 깨우쳐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일”이라고 자처하고, “또한, 비록 어려운 길이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 시민들이 원한을 풀고, 이제는 반성과 화해를 앞당겨 밝은 미래로 상생해가는 지름길이 되리라 확신합니다”고 하였다. 

 간토대지진에서 흉포한 일인들의 선동과 일제 당국의 방관으로 아니 나라 빼앗긴 죄로 죽어간 당시 백의 조선인 희생자들은 3.1운동의 희생자들보다 더 원통하다. 시신들이 마구 뒤엉켜 쌓인 당시 참상 사진을 보며 현재의 우리도 피가 싸늘하게 끓는다. 망각할수록 망각하지 않는 기억, 괴롭고 비참한 저주 받은 기억이여. 

 그러다가 우리는 한 세기 시차와 달라진 상황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귀에 익은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하지만 어렵기만한데, 이 시의 11, 12행을 다시 읽다가 증오와 적의를 악착같은 그 무엇을 떼어내듯 뽑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원한이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장마 진 냇물의 여울 속에 빠져서 나는 살련다’. 이 의지는 7행 ‘나는 살련다 내 뜻대로 살련다’의 ‘내 뜻’. 철천의 희생 영령(英靈)들이 진정 소원하는 것은 그러니까 원한의 지속이나 응징의 복수가 아니라 다만 ‘부끄럼 없이 몸살’ 치듯 사는 것, 즉 생명 자체에 유감없이 충실하면서 자신과 세상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삶이다. 이 지향에는 가해자들은 그러지 않았다는 뜻과 산 자들에게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이 시의 끝 문장에서도 부각되는 ‘죽어서라도 살고는 말련다’의 취지는 ‘원한이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즉 그 지우거나 잊은 상태에서, 그저 인간답게 살겠다는 의지, 죽어서도 그렇게 살겠다는 소원 표백이다. 

 이 시에서 이상화의 시 세계, 그 편폭을 다시 본다. 무어라 이름 붙여야할지 어려운 시인의 심원한 염치 삶에의 열망과 인류에게 바치는 휴머니즘 충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속출하는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들을 목격하며 이 시의 메시지에 우리는 다시 절실해진다. 전쟁 당국자들은 이 시도 읽고 희생자 망자들의 심정을 알아야 하고, 천지에 용납되지 않는 비천하고 추루한 폭력을 당장 멈추거나 최소한 무고한 민간인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이상화는 일제 치하 조국의 비통한 현실을 정신이 아니라 영혼의 차원에서 접응하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에서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라고, 식민지 조선 천지의 봄 신령이 자신에게 빙의하였다고 화자는 탄식하였다. 우리가 오늘 읽은 「독백」은 그 전편(前篇)이다. 불우한 시대를 산 지사 시인의 막심하고 고원한 강개(慷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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