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리고분군과 원효성사 오도처 학술발표회’에 모인 청중. (사진=수원일보)
‘백곡리고분군과 원효성사 오도처 학술발표회’에 모인 청중. (사진=수원일보)

[수원일보=이민정기자] “화성시 마도면은 원효성사와 의상대사가 당나라로 유학을 가기 위해 당성으로 가던 중, 마도면 백곡리 입피골(樴山) 향성산(鄕城山)의 백제 대형무덤군에 유숙하면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세상사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 오도처입니다”

13일 화성시 마도면 마도문화센터에서 열린 ‘백곡리고분군과 원효성사 오도처 학술발표회’에서 정찬모 화성지역학연구소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화성지역학연구소가 주최·주관하고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문화재청, 화성문화원, 마도면주민자치회가 후원한 이날 학술발표회에는 지역사학자와 주민은 물론 화성미래연구소, 한국불교문인협회, 수원문화원 부설 수원지역문화연구소 관계자 등 약200명이 참가, 성황을 이뤘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원효성사가 깨달음을 얻은 오도처를 화성시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자리다.

행사는 김민흡 화성지역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장의 연혁과 경과 소개, 정찬모 소장의 인사말에 이어 △이경렬 상임연구위원의 ‘당은포로 및 원효성사 관련 사찰 탐방’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의 ‘원효성사 오도처는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이다’ △세종대 박물관 황보 박사의 ‘화성 백사지와 주변 유적’ 주제 발표, 질의 응답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시인이기도 한 이경렬 상임연구원은 원효 관련 107개 사찰과 사지를 답사한 과정을 소개하면서 “원효성사와 의상대사가 머물렀다는 무덤은 분명히 존재한다.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 고분이 그곳이다. 당성의 존재도 신빙성울 높여준다”면서 “원효성사는 당연히 서라벌에서 출발해 당성을 향해 왔고 당성 인근의 무덤에서 머물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영섭 동국대 교수는 “제천 월광산 원랑선사 비문에서 언급한 직산의 ‘직(樴)’은 말뚝이며 산은 당(항)성을 알리는 비(피)가 세워진 산인 구봉산을 일컫는 것일 것”이라면서 “여기서 말뚝은 큰 돌로 세운 비를 가리키며 산은 당성이 자리한 구봉산을 일컬었을 것인데 현재 당성과 마도면 백곡리 690 일대가 ‘입피골’로 불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성비가 세워진 마을, 즉 ‘입비(立碑)골’ 추정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고영섭 동국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수원일보)
고영섭 동국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수원일보)

고 교수는 서산 보원사지 탄문국사 비문에는 ‘향성산 안에 있는 절에 원효보살과 의상대덕이 함께 쉬었다’라는 구절이 있다면서 “현재 남양장성 안엔 향기실이란 마을이 있고 뒷산인 향성산은 마도면 백곡리를 감싸고 있으며 거기엔 백제의 대형고분들이 남아 있다”면서 “원효의 오도처는 화성시 당항성 아래의 마도면 일대 무덤이나 사찰이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대 박물관 황보경 박사는 “의상과 원효가 겪었던 무덤에서의 경험 및 유학의 출발지 등과 연원이 되어 ‘백사(白寺)’라는 사명이 지어졌을 개연성이 있다. 백곡리 인근의 백사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명문 기와는 물론 건물지 1동과 신라토기, 기와 소조 불상편이 출토됐다”면서 “창건 시기나 사찰명의 기원은 의상과 원효대사가 당항성을 통해 당으로 유학을 떠나려고 했던 일화 및 의상이 돌아왔을 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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