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2일) 중국 리커창 전 총리의 영결식이 베이징에서 엄수됐다.

그리고 화제였다. 추도 분위기가 국가주석급 이상이어서 더했다.

특히 지난 10월 27일 심장마비 사망 이후 언론의 침묵 속에서도 중국 전역에서 추모 열기가 대단했던만큼  서방의 관심도 컸다.

사망당시 '리커창 동지가 세상을 떠났다'라는 해시태그(#)가 사흘동안  22억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데서도 그의 중국인 애도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난득호도(難得糊塗)를 최대 미덕으로 삼으며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중국인의 습성을 고려하면 놀랄정도다.  

우리나라도 깊은 애도와 추모의 뜻을 표한 것은 물론이다. 리커창 전 총리는 생전에 1995~2015년 기간 총 4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 있다.

인사유명(人死留名) 이라고 했듯, 10년동안 총리로서의 그의 역할이 중국내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그리고 '총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국민의 칭송을 받을수 있나'가 화두다.

총리는 나라마다 역할이 조금씩 다르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는 비슷하다.

총리탄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재상(宰相) 자리도 다르지 않다.

절대군주시대 총리를 대신한 자리가 재상이어서다.

재상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나라는 중국이고 문헌은 주례(周禮)다. 주례에 따르면 재상은 본래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나눠 주는 요리사를 의미했다.

제정일치 사회였던 고대 사회에서 제사는 지도자의 통치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원래 ‘재(宰)’는 요리를 하는 자, ‘상(相)’은 보행을 돕는 자로 둘 다 수행하는 자를 이르던 말이었다.

이후 진(秦)나라에서 최고 행정관을 뜻하게 되었다. 그리고 국가의 2인자로서 군주를 보필하는 관료 우두머리의 통칭((通稱)이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상'을 신라 때 '상대등(上大等)'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조선시대 영상(領相) 즉 영의정(領議政)으로 불렀다.

정부의 수반, 국무총리의 등장은 1948년 제정헌법에 의해서다.

지금은 대통령을 보좌하여 행정부 제2인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

절대권력자 유고시 권한대행 서열 1위지만 평소 역할론만 놓고 볼 때 한계도 많다.

지나온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 더 적나라하다. 물론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리커창 전 총리의 10년 행적이 중국인들의 칭송을 받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동안 48명의 총리를 배출한 우리나라의 '국무총리 잔혹사'를 돌아보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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