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하다. 어떤 민원인이 수원시청에 전화를 걸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칼을 들고 찾아가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시청에 찾아온 한 민원인은 생면부지의 담당 공직자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공직자가 이를 거절하자 민원대를 내리치며 난동을 부렸다. “(옷을)뒤져서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소리 질렀다. 어디서 본 장면 같지 않은가? “만약에 돈이 나오면 10원당 한 대씩 때리겠다”는 학교 일진들이나 동네 폭력배들의 행동이 떠오른다.

악성민원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악성 민원인을 상대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동화성세무서 여성 세무공무원이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그보다 앞서 7월엔 학부모들의 민원을 견디다 못한 서울 서이초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원시인권센터가 시 전체 공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공직자 인권침해 실태조사’가 관심을 끈다. 전체 공직자(3937명)의 78%인 3072명이 참여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66.9%가 민원인들로부터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인권센터는 뭉뚱그려 ‘특이민원’이라고 했지만 ‘폭언’(60.7%), ‘부적절한 호칭’(48.5%), 반복 민원(43.2%)이다. 인권침해 피해 경험이 있는 공직자가 피해 경험이 없는 공직자보다 직무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원시는 민원 담당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수원시의회는 지난해 1월 제364회 임시회에서 민원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수원시 민원업무담당 공무원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했다. 조례는 민원인 폭언 및 폭행 등에 대해 신고와 보호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공무원은 보호와 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와 함께 시는 민원실 내 비상벨 설치, 휴대용 보호장비(웨어러블 캠) 도입, 민원 담당 공무원 법률상담·의료비 지원 등 보호·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달엔 민원인 폭언‧폭행에 강력 대응하기 위해 경찰과 함께 ‘실전 모의 훈련’을 진행했다. 모의 훈련은 ‘비상대응반’을 편성해 민원인 폭언이 발생하면 폭언 중단을 요청하거나 진정을 유도하는 한편 사전고지 후 녹음·촬영, 경찰서 연계 비상벨 호출 등 실제상황을 반영했다.

시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 더 적극적으로 민원 담당 공무원 보호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직자는 우리의 세금으로 행정 분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없으면 정상적인 시민생활은 불가능하다. 공직자는 내 남편이나 아내, 아들이나 딸이다. 내 친구이고 가까운 이웃이다. 공직자들이 악성민원으로부터 보호돼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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