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등산객이 많다. 아니 다른 철보다 더 많은가. 등산도 특정 취향의 스포츠지만 한편 일종의 철학 행위이며 어떤 정신의 고양에 수렴되는 성찰의 행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산행(山行)이 다른 스포츠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산을 오르고 내리는 행위에서 인생 전체나 모든 국면이 서로 대비되는 두 필연이 조화로 조합되어야 그런대로 무난한 유종의 구조를 이룰 수 있다고 자각하며, 성경(誠敬)과 겸손 같은 도리와 지혜를 은근히 음미할 수 있다고 자긍한다. 일찍이 공자는 산을 “인자요산(仁者樂山 :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요수(知者樂水 :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라고 예찬하였다.[오늘만큼은 이 말씀에서 산과 물을 대등하게 대조하지 말자. 물, 즉 강의 원천이 바로 산의 일부인 샘 아닌가. 또 산에 이윽고 대하가 될 시내가 있고, 폭포마저 있다는 사실도 새삼 상기하자. 그럴 리 없겠지만 지(知)도 인(仁)에 의거하지 않는다면 그 정체가 어색하다] 간명하지만 공자의 그 언급은 모두 상징으로 확장되며 함축이 너무 크고 깊어 누구라도 제대로 부연하기 어렵다. 그러려다가는 오히려 졸렬해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위대한 그 사람도 허리에 숲을 두른 높은 산에서 10년 수양하고 ‘즐거운 고통’을 겪으러 평지로 내려오지 않았던가. 각설하고 다음 시는 그 겨울 산행에 관련된 한 토로다.     

 

사람이 그리워 

외로운 날은

겨울 숲에 가자

 

슬퍼하지 않고

눈빛 정겹게 주고받는

나무들의 마을,

겨울 숲에 가자

 

사람이 그리워

어쩌다 서러운 날은

겨울 숲에 가자

 

미워하지 않고

가슴 따스하게 열어 놓는

나무들의 마을,

겨울 숲으로 가자

 

바람이 불면 어떠리,

눈 내리면 더욱 좋아라

 

나무들의 마을에서

바람은 여장을 풀고

 

그리움처럼

나무들의 가슴마다 쌓이는

눈꽃의 향기

 

아아, 사람 그리워

행복한 날은

겨울 숲에 가자

 

서로서로 끌어안고

어깨를 감싸주며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의 마을,

겨울 숲으로 가자

                            - 「나무들의 마을」/임병호

 

 얼어붙은 ‘겨울 숲’으로 가자는 담백하고 직정어린 화자의 권유가 반복되고 있다. ‘사람이 그리워/외로운 날’, ‘사람이 그리워/어쩌다 서러운 날’, 그리고 ‘사람 그리워/행복한 날’에. 여기서 그리운 ‘사람’은, 행간의 취지를 고려하면, 과격하게 말해 ‘사람 같은 사람’, 완곡하게 말해 ‘인지상정(人之常情)을 갖춘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외롭고 서러우며 그래서 같은 입장이라면 같이 일탈하자는 것인데, 행복하여도 가보자는 그 곳은 어떤 곳인가. ‘슬퍼하지 않고/눈빛 정겹게 주고받는 나무들’ ‘미워하지 않고/가슴 따스하게 열어 놓는 나무들’ ‘서로서로 끌어안고/어깨를 감싸주며/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의 마을’ 바로 겨울 산의 ‘겨울 숲’이다.  

 그 숲의 투명하고 정결한 낙목한천(落木寒天), 그 고적한 견인의 온아한 풍경에서 화자는 오히려 그래서 나목(裸木)이야말로 우리의 본래 모습이며 또 서로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화자의 이러한 인식은 사람이 이룬 마을의 최초 형태와 진정한 공동체의 정리(情理)를 기저로 한다. 

 한편 우리는 화자의 권유에 동의하기에 앞서 화자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불화가 있고 타인 쪽에 원인의 비중을 둔 자기중심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나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관련 행간에서 알 수 있듯 권유의 날이 모든 날이 아니다. ‘사람이 그리워/외로운 날’, ‘사람이 그리워/어쩌다 서러운 날’, 그리고 ‘사람 그리워/행복한 날’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나아가 여러 개체 사회 정치의 이유로 먹이와 명리(名利)에 사로잡혀 뜻이 다른 타인을 배척하고 증오하는 상당한 우리를 문득 떠올리면, 화자의 권유를 무슨 소용없는 낭만성 일탈이라고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화자가 권유의 핵심으로 우리에게 은근히 제시한 바람도 멈춘 고요한 겨울 숲속 나무들 정갈한 가슴에 핀 ‘눈꽃의 향기’, 그러니까 화자가 자신의 그, 혹은 우리의 그 ‘그리움’의 향기라고 한 그 향기가 대체 어떤 향기인지, 우리는 한번 길게 깊이 흠향하고 자신의 어떤 면모를 정화하고 싶어 할 것 같다.    

 사족 : 같은 화자가 등장하는 다른 시에서 그 곳은 수원과 용인을 잇는 광교산(光敎山)의 숲. 이런 산과 숲은 우리 주변에도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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