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에 2024년 새해의 먼동이 텄지만 그 여명에 영장류 인간이 자행하는 전쟁의 참화가 여전히 붉게 어려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죽어가는 이들의 단말마가 이어지고, 가자 지구에서는 지난 성탄절에도 이스라엘이 폭격하여 그날에만 아이들을 포함해 주민 250여 명이 죽었다. 성탄절, 성탄절에도 말이다. 하마스에게 “항복이냐 죽음이냐”고 외치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그래도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고 병사들을 독려하였고, 이스라엘 감옥에서 23년 갇혔던 하마스의 신와르는 “점령군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오늘 읽을 시는 지난 달 12월 6일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의 30대 시인 레파트 알라리르(1979-2023)의 시 「If I Must Die(내가 죽어야 한다면)」이다.(〈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번역)] 형제, 여동생, 여동생의 네 자녀와 함께 죽은 그는 팔레스타인 문화와 정체성을 대표하는 인물. 가자 이슬람대에서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쳤고, 가자 출신 젊은 작가들의 단편 소설집 『Gaza Writes Back』을 편집하였으며,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단체 〈We Are Not Numbers〉를 공동 창립하여 시민운동에도 나섰었다.

 

If I must die

you must live

to tell my story

to sell my things

to buy a piece of cloth

and some strings,

(make it white with a long tail)

so that a child, somewhere in Gaza

while looking heaven in the eye

awaiting his dad who left in a blaze –

and bid no one farewell

not even to his flesh

not even to himself –

sees the kite, my kite you made, flying up

above

and thinks for a moment an angel is there

bringing back love

If I must die

let it bring hope

let it be a tale.

 

내가 죽으면

너는 살아서

내 이야기를 전해줘

내 물건을 팔아

천과 끈을 사서

(긴 끈이 달린 하얀 것으로 만들어줘)

눈에 하늘을 담은

가자 지구 어딘가에 있을 아이가

누구에게도

그의 육신에게도

그 자기 자신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못 하고

포화 속에서 사라져 버린 아빠를 기다릴 때

네가 만든 내 연이 날아다니는 걸 보면

잠시 동안 천사가 있다고 생각할 거야

아빠를 다시 데려올 천사를

내가 죽어도

희망이 되게 해줘

이야기가 되게 해줘

                              - 「If I Must Die(내가 죽으면)」/레파트 알라리르

 

 거듭되는 전화(戰禍)를 겪으며 진창에 다리 빠진 채 앞으로 나아가려는 푸른 개구리처럼 괴로워하던 알라리르는 이 시의 초두에서 알 수 있듯 죽음을 예감했다. 거의 무차별 폭격과 포격에 가자에서 사실 그 누구도 생존의 지속을 자신할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시인은 동족이 ‘희망’을 포기하지 말기를 희구하며, 미리 유언 시를 썼던 것이다. ‘내가 죽으면/너는 살아서/내 이야기를 전해줘’. 그 ‘너’는 그의 팔레스타인 지인만이 아니며, 그 지인만일 수 없다.  

 자신의 유품을 팔아 꼬리 긴 ‘하얀’ ‘연’을 ‘천사’처럼 만들어, ‘누구에게도/그의 육신에게도/그 자기 자신에게도/마지막 인사를 못 하고/포화 속에서 사라져 버린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눈에 하늘을 담은’ 아이들에게 보여 달라고 하였다. 절규지만 절제하며 쓴 듯한 이 시를 그렇게 읽어보려고 하지만 결국 터져 나오는 통곡으로 읽게 되는 이 비참한 ‘희망’가, 우리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목전의 일상을 중지하고 가자 사람들의 모든 가슴을 헤아리게 된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이 연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상자는 최소 이스라엘의 10배를 상회한다. 근본원인을 제치고 보복으로만 따지더라도 이 정도라면 아무래도 죄악이다. 이스라엘에 절제와 염치를 촉구한다. 그런 전쟁이 없는 사해동포(四海同胞) 지구라면 유토피아에 가깝다고 할 수는 없어도 사람이 살만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이번 전쟁을 하마스가 일으켰다고 해서 하마스의 지도부가 밉다고 해서, 이 참극을 계속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이 당장 전투를 멈추거나 최소한 지난 성탄절 공습 같은 무자비한 만행을 반드시 멈춰야 한다. 또 비극의 반복을 막으려면 1967년 제3차 전쟁 이래 점거하고 있는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의 고토를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42호에 따라 돌려주며, 두 지구[나치의 게토 비슷한 세계 최대의 지붕 없는 감옥]에 강제로 설치한 높이 6-8m 길이 수백Km 분리장벽도 철거해야 한다. 이렇게 과감한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곡절 끝에 전쟁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스스로 고사(枯死)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끝없이 저항할 것이고,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비극이 반복되고 반복된다면 두 피가 장벽을 넘칠 것이다. 

 위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사망도 예견하고, 원한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을 노래하며, 아빠가 돌아올 것이다, 조국이 돌아올 것이다고 하였는데, 그 희망을 ‘잠시 동안’이라 하여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가자의 아이들은 동심이면서도 동심일 수 없다는 사정을 시인은 아무래도 감안한 것인가. 그러나 레파트 알라리르의 이 시 「If I Must Die(내가 죽으면)」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잊지 않고 매일 읽고 새길 것이며, 연이 되어 그 어떠한 공습에도 찢어지지 않고 가자의 하늘에서 떠다닐 것이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이들같이 ‘눈에 하늘을 담은’ 가자의 아이들에게 ‘아빠를 다시 데려올 천사’가 되기를 이스라엘부터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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