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1936)와 「사반의 십자가」(1955)의 작가 김동리(金東里 : 1913-1995) 선생이 타계한지 29년. 선생의 시인 면모는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백로(白鷺)」 입선과, 1937년 서정주 김달진 함형수 오장환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발간한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 선생의 연보를 읽다가 선생이 최초로 발표한 작품이 시 「고독(孤獨)」(1931년 〈매일신보〉)이었으며, 일흔을 훨씬 넘긴 때에 「독작(獨酌」 외 시 9편을 썼다는 사실 등을 비로소 알았다. 유추할 수 있듯 거명된 두 시에는 인간 존재의 고독, 생애의 저변에서 관통하는 그 근원 조건과 심경이 다루어지는데, 다음 시는 선생의 내면에서 넘칠 듯 말 듯 늪의 물처럼 일렁거렸을 그 절대에 관련된 한 여운이다.     

 

나는 오랜 옛 서울의

한 이름 없는 마을에서 태어나

부모형제와 이웃 사람의 얼굴, 그리고

하늘의 별들을 볼 적부터

죽음을 밥 먹듯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에 피는 꽃의 빛깔과

황혼에 지는 동산의 가을 소리도

이별이 곁들여져, 언제나

그처럼 슬프고 황홀했다.

술과 친구와 노래는 입성인양 몸에 붙고

돈과 명예와 그리고 여자에도

한결같이 젖어들어

모든 것을 알려다

어느 것도 익히지 못한 채

오직 한 가지 참된 마음은

내가 눈 감고 이미 없을 세상에

비치어질 햇빛과 피어나는 꽃송이와

개구리 우는 밤의 어스름달과

그리고 모든 사람의

살아 있을 모습을 그려보는 일이다.

                    - 「자화상」/김동리 

 

 우선, ‘모든 것을 알려다/어느 것도 익히지 못’했다는 노년의 경과성 자의식이 그 고백을 기저로 지난 생애를 편술(編述)하고 있다. 진술이 평명하지만 우리는 ‘부모형제와 이웃 사람의 얼굴, 그리고/하늘의 별들을 볼 적부터/죽음을 밥 먹듯 생각하게 되었다’는 문제의 출발을 재차 읽어야 한다. 어째서 그랬는지 까닭이 제시되지 않았으나,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인생의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시에서는 그 흔적이 없지만 선생은 자전류(自傳類) 산문에서, 네다섯 살 무렵에 이웃집 여자아이가 죽어 그 아버지가 가마니로 싼 시신을 지게에 얹어 진달래인가 울긋불긋 꽃핀 산으로 사라지던 모습을 보았고, 이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을 자주 생각하였다고 하였다. 선홍 심장에 강력하고 예리하게 찍힌 낙인 같았을 그 남다른 인식은 선생의 삶에서 주요 무의식으로 때로는 활화산 때로는 휴화산이 아니었나 한다. 

 비평가 김주연이 언급한 대로 선생은 ‘올 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시 소설 평론을 넘나드는 오랜 창작 이력과 작품의 수월한 질량, 뿐만 아니라 일제와 타협하기를 거부하였고, 해방정국에서는 문학이론 주도로도 유명하였으며, 전후(戰後)에도 창작을 왕성하게 지속하며 대학강단 내외에서 「토지」의 박경리 등 기라성 제자들을 육성하였으며, 문학단체의 수장도 역임하였다. 하지만 그런 이력이 전부가 아니었다. 선생의 분방한 삶의 궤적에는 늘 ‘죽음’이 문제로 동반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이 선생을 동반해 나아간 것인가. 선생이 죽음을 동반해 나아간 것인가. 

 샤머니즘과 선도(仙道)와 불교와 기독교를 아우르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근대를 초극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며 제3기 휴머니즘을 지향하였던 선생의 삶과 영욕은, ‘모든 것을 알려다/어느 것도 익히지 못’한, 그러니까 죽음을 포함해 삶의 구경(究竟)이 무엇인지 연속 추구하다가 맺은 연분의 연쇄였다고 하겠다. ‘술과 친구와 노래’와 ‘돈과 명예’와 이성들도. 그리고 또 우리는 깨닫는다. 그런 한편 ‘아침에 피는 꽃의 빛깔과/황혼에 지는 동산의 가을 소리도/이별이 곁들여져’ ‘언제나’ ‘슬프고 황홀했다’는 것을. 다시 말해 모든 현상과의 조우에 이별이 함께하고 그 병행에서 운명을 자각하며 ‘슬프고 황홀했다’고. 그 여로의 행보, 이윽고 그 종국을 예감하며, ‘내가 눈 감고 이미 없을 세상’을 또 그려본다. 누리에 ‘비치어질 햇빛’, 수줍게 ‘피어나는 꽃송이’, 목탁 같은 ‘개구리’ ‘울음’이 스미는 ‘어스름달’, 그리고 ‘모든 사람의/살아 있을 모습’이다. 그렇다면 선생이 피안에서 미소 지으며 지금도 보고 허여하는 그 세계는 여전히 지상의 이 세계가 아닌가. 우리는 선생의 시 「5월」을 읽으며 한 생각에 잠겨야 하리. 

 

5월의 나무들 날 보고

멀리서부터 우쭐대며 다가온다

 

언덕 위 키 큰 소나무 몇 그루

흰 구름 한두 오락씩 목에 걸은 채

신나게 신나게 달려온다

 

학들은 하늘 높이 구름 위를 날고

햇살은 강물 위에 금가루를 뿌리고

 

​땅 위에 가득 찬 5월은 내 것

부귀도 선향(仙鄕)도 부럽지 않으이

  

 사족 : 그런데 이 5월 풍경은 “세상과 소란은/장바닥 먼지 함께/달빛에 젖어 잠들면//까마득하게 높은 하늘 위로/울음 삼키며, 새 한 마리/가만히 날아간다“(「달밤」 4, 5연)는 정경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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