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옳았다. 법치주의가 보편화 된 21세기에 왕조시대 관찰사처럼 무소불위하게 권력을 휘두른 수원시에 의해 두 명의 동료 공무원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도 지배적 다수의 공무원들처럼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떡하겠느냐…"며 침묵하고 싶었을 것이다.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밤을 뒤로 하고 그는 "나 개인적이라도 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언론에 보도된 공무원 자살관련 4편의 기사를 수원시 공무원들의 온라인 마당인 행정포털시스템(자유게시판)에 올렸다.

그는 "이쯤해서 그만 둘까..."하고 한 번 더 고민하다가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염태영 수원시장을 고발하겠습니다"는 글을 게재했다.

수원시는 지난해 7월 그의 이 같은 행동이 행정조직 전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위계질서를 무시하는 처사인데다 대내외적으로 수원시 행정을 비판함으로써 수원시 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켰다며 시 인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그를 해임 조치했다.

신분보장(정년 보장)이 생명 같은 직업공무원에게는 '직업적 사형 선고'와 같은 행정 조치를 수원시가 자행하던 날, 그는 물론 그만 바라보고 살아 온 가족들은 얼마나 망연자실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주권 치하나 군부독재 치하에서나 가능한 수원시의 '공권력 횡포' 앞에서 그는 굴종하지 않았다. 경기도소청심사위원회 심사 청구 끝에 강등처분을 받게 되자 수원시를 상대로 강등처분취소소송을 제기, 지난달 26일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가 이겼다. 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옮음이 '공권력 횡포' 앞에 무참히 꺾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선택이 오롯이 '정의'에 바탕했기 때문이다.

본보가 보도한 바 있듯이 재판부인 수원지방법원 제2행정부(임성철 재판장)는 소통교육으로 인해 2명의 직원이 자살하는 등 수원시 행정의 부당성을 지적한 직원에 대해 수원시가 해임처분을 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심지어 재판부는 "그의 행동은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시 내부게시판에 소통교육의 문제점과 부작용 및 개선점에 관한 견해를 밝힌 것일 뿐이고 시가 징계사유로 적시한 것과 같은 '내부갈등을 조장하고 공직분위기를 저해하거나 위화감을 조성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며, 그의 게시글이 그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도 없음"을 판결문으로 남겼다.

지난달 26일에 내린 이 판결은 한 용기 있는 공무원의 행위에 대해 합법성을 부여한 것이고, 위 사건상의 수원시의 공권력 남용이 사실상 불법이라는 유권 해석을 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게도 수원시는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 지난 11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수원시의 이러한 행태는 준엄한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체적 진실을 시민들이 소상하게 알게 된다면 공분을 면치 못할 일임은 물론이다.

이번 사태를 법치주의적 관점에서 살펴 볼 때 '염태영호(號)'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고질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제시한 '목민관'의 구구법이라 할 수 있는 '겸양된 자세'가 실종되어 있다.  "전임 시장을 지지한 공직자들에 대한 보복성 조치의 결과 발생한 비극"이라는 설이 파다한 가운데 2명의 공무원이 비명에 생을 마감했을 때 염태영 시장은 비공개로라도 겸손히 사죄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염태영 시장은 사죄는커녕 실체적 진실을 추구하려는 정의로운 공직자가 시장 면담을 요구했음에도 그를 무작정 방치하였다. 이에 항의하며 사태를 공론화 하자 수원시는 '해임'이라는 공직생명에 대한 사형선고를 하였다가 이번 판결에 이르렀다. 겸손치 못한 결과다.

둘째, 야누스의 얼굴로 '혹세무민'을 하고 있다.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건만, "억울하게 동료들이 자살을 했으니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라 대화를 하자"며 공무원들이 시장 면담 신청을 하였음에도 거부했다.

소통 부재, 그 자체이다. 공무원은 시장에게 있어서 부하직원임과 동시에 시민이며 유권자이건만 '면전박대'를 하였다. 심지어 '행정살인(불법적 해임)'을 자행하였다. 시민을 경시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본색을 숨기고 온갖 홍보매체를 총동원해 '이미지 메이킹'에 열을 올려왔다. 시민들은 속고 있다. 

셋째, 독재자들이 공포정치를 자행하듯, 21세기 법치주의 시대에 공포행정을 펴고 있다. 불법 부당한 행정에 항의하였다 하여 수원시가 휘두를 '행정살인'에 죽을 뻔했다가 법원이 손을 들어 줘서 살아난 사람에게 만시지탄이지만 속죄를 했어야 한다.

그러나 수원시는 오히려 상급법원에 항소를 하였다. "수원시 행정의 불법이나 문제점을 '감히' 지적한 사람은 이렇게 된다."는 시범케이스를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 법치주의에 불복을 서슴치 않으면서까지 '보복행정', '공포행정'을 불사하고 있다.

법치주의란 현재 수원시와 같은 자의적 행정을 막음으로서 '물이 흐르듯이 자유스러운 세상'에서 시민들이 마음껏 자유를 향유하게 하기 위해 정립된 천부적이고 절대적인 헌법이념이다.

이를 도외시 하는 것은 법치주의는 물론 하늘에 대한 도전이다. "순천자흥(順天者興), 역천자망(逆天者亡)" 이제라도 수원시가 귀담아 들어야할 생명수와 같은 격언이다.

"역사란 과거를 통해 오늘을 진단하고 미래를 조명하는 것"이라는 정설에 의한다면 안타깝게도 수원시가 환골탈태(換骨奪胎)할 것 같지는 않다.

수원시가 반법치주의적 행보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결국 수원시민의 힘으로 수원시정을 법치주의에 맞게 바로 세워 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수원시의 조직적인 만행 앞에서 홀로 저항하였던 한 용기 있는 공직자의 '실천적 정의감'이 수원시민들의 공감대적 가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의로운 수원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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