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인중개사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전세사기사건이 전국적으로 끊이지 않으면서 더 추락했다. 물론 모든 중개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사기꾼들과 한 통 속이 돼 애먼사람들의 피눈물을 쏟게 하는 '야바위꾼'들을 말한다. 얼마전에도 수원에서 전세사기 주범의 숙주 노릇을 하던 공인중개사사무실이 철퇴를 맞았다. 전문성과 안전 거래를 믿고 복비까지 지급했는데 결과는 사기라니, 그리고 현재 모두 줄행랑을 치고 잠적했다니 범죄 이상이다. 

최근 국토교통부의 자료를 보면 더 기가 막힌다.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전세 사기로 의심되는 거래중 전체 970건 중 414건에 중개사·중개보조원이 연루됐다는 사실이다. 전세 사기 10건 중 4건이 중개사나 주변 인물이 얽혀 있다는 얘기다. 돈 몇푼 벌자고 사기꾼과 협잡해 서민을 울리는 일부 공인중개사의 모럴해저드에  분노까지 치밀게 한다.

공인중개사가 과거엔 이 정도가 아니었다.  부동산 거래를 통해 복과 덕을 준다고 해서 복덕방(福德房)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어서다. 60~70년대는 동네 사랑방과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정보 교류의 장이었다. 중개 성사로 복비를 주면 주는대로 받기도 했다. 노인들의 전유물로 치부되면서 그야말로 복과 덕이 있는 방으로서 역할도 담당했다.  

이런 복덕방은 19세기 조선시대 '가쾌(家儈)'에서 비롯됐다. '가쾌'는 '집주름' 이란 뜻으로 당시 한성부에서 행정을 도와 집의 소유상태나 이동여부를 파악해 보고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 지역에서 오래 산 사람이 맡았고 정보를 이용, 땅과 집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레 지금의 공인중개사 역할을 했다는 것.  중개수수료도 있었다는데 '담배 한 근'정도였다니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라 정겹기 까지하다.

복덕방은 1980년대 강남개발 붐이 일며 ‘복부인’과 ‘떴다방’이 등장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결국 1983년 ‘부동산중개업법’이 제정돼 공인중개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명칭도 바뀌었다. 1985년 1회 시험엔 15만여 명 응시에 6만여 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그리고 '중년고시'로 불리며 인기 가도를 달렸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중인 공인중개사는 약 11만9000여명. 그리고 거대 전문집단으로 변해 정치권 등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월영즉식 (月盈則食)이라 했던가. 오는 28일 치러지는 올해 시험 응시자가 10만명 가량 줄었다고 한다. 부동산 경기침체, 신뢰도 추락이 원인으로 작금의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덩달아 올핸 문 연 중개사보다 문 닫은 곳이 더 많다고 한다. 복을 주어야할 중개사가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전세사기의 공범으로 전락한 결과여서 안타까움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생각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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