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일(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새해 첫날을 이컫는 말이다. 고전이라  MZ세대들에겐 낯설고 시니어 세대들에겐 정겹다. 차례(茶禮)와 새 옷 입는 세장(歲粧), 어른 찾아뵙는 세배(歲拜), 시절 음식을 대접하는 세찬(歲饌), 곁들이는 술한잔 세주(歲酒)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설날’ 풍속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라지는 감도 아쉽다. 

그렇다면 ‘설’ 어원은 어떻게 될까? 정설은 없다. 그러나 ‘낯설다’는 의미에서 ‘새로움’, ‘덜 익다’를 뜻하는 ‘설다’에서 왔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가하면 나이가 ‘몇 살’이라고 할 때의 ‘살’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설’이 들어간 이들 단어들은 모두 어원상 동계어라서 이 또한 설득력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공통 의미가 ‘처음,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설’은 한 해의 시작일이다. 또 설날에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니,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이 ‘설’로 인식된 뜻도 포함된다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아무튼 오늘은 설날이다.  흩어진 가족을 모으는 명절의 힘이 발휘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고 가족과 친지를 만나는 동안 결코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아울러 고향과 가족에 대한 보람과 감동으로 다시 1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시인 김종길이 ‘설날 아침에’란 시에서 읊은 것처럼.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듯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설이 모두에게 반가운 날만은 아니라 사실은 슬프다. 설을 손꼽아 기다려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아서다. 그런데다 세시풍속이 변해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설'이 되어가고 있어 더 그렇다. 

가족이 함께 할 가정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마음도 아프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 의미의 ‘온전한 가정’은 이제 전체 가정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부부만의 가정이거나 1인 가구도 나머지의 35%를 넘는다고 한다. 설날을 맞아 가족의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 생각케하는 통계다.

“까치야 까치야 뭣 하러 왔냐/ 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 이제 우리 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손도 없고/ 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하략). 김남조 시인의 시가 새삼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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