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2월 4일은 내 생애를 바꾼 위대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홍응표 형, 최광수 형과 함께 에베소서 1장을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7절을 읽을 때에 헤드라이트 불빛 같은 빛이 내게 비쳤습니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된 시간입니다.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이미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믿는 나로 하여금 고뇌와 방황, 죄와 허물에서 이미 해방하셨음을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교회를 열심히 다녔거늘 이 단순하고 분명한 진리를 왜 깨닫지 못하고 지났을까 하는 마음이 내 심장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젊은 날의 그 숱한 고뇌와 방황, 죄와 허물에서 해방되었다는 감격과 기쁨이 온 맘을 감쌌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죄 짐이 내게서 벗겨진 감격으로 찬송가 421장을 소리 높이 불렀습니다. 감사의 눈물을 훔치며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내가 예수 믿고서 죄 사함 받아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내가 가는 길 천국 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가 씻겼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주님 밝은 빛 되사 어둠 헤치니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내가 주 앞에 온전케 됨은 주의 공로를 의지함일세

 내게 성령 임하고 그 크신 사랑 나의 맘에 가득 채우며

 모든 공포 내게서 물리치시니 내 맘 항상 주안에 있겠네"

 

이 찬송가의 영어 제목은 〈Everything is Changed〉입니다.

이 찬송가의 제목 그대로 그 후 나의 삶이 변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새롭게 만난 나는 그 다음 날로 미국 유학을 수속하고 있던 서류를 몽땅 휴지통에 던져 버리고 신학교로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내가 계명대학교의 학생 시절에 교수 중에 미국 선교사인 구의령(Grubb)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나를 만날 적마다 충고 아닌 충고를 하였습니다.

"미스터 김, 철학과를 졸업한 후에 신학교를 가세요. 미스터 김이 목사가 되면 한국교회에 좋은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절 나는 목사가 될 생각은 전연 없었기에 퉁명스레 답하곤 하였습니다.

"선교사님 악담하지 마세요. 내가 왜 목사가 됩니까. 나는 철학을 열심히 하여 모교에서 철학 교수가 될 겁니다."

그러던 내가 대학 졸업 후 2년이나 지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거듭나는 체험을 한 후에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철학 교수가 되는 희망에서 목사가 되는 희망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에 나는 구의령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선교사님, 저 이제 신학교로 가서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고 말하였더니 구의령 선교사는 기뻐하면서 말했습니다.

"미스터 김 축하합니다. 그런데 신학교 입학 시즌이 아직 몇 개월 남았으니 목회자가 없는 시골 교회로 가서 목회하다 신학교 입학을 하세요. 내가 적합한 교회를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그 제안을 좋게 여겨 "고맙습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였더니 나를 랜드로버 차에 태우고 목회지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경계 지점인 달성군 목단교회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교인 30여명이 모이는 농촌 교회였습니다.

교회당 곁에 사택이 붙어 있는 아담한 건물이었습니다. 사택에 짐을 풀고는 가정 방문으로 목회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농번기여서 교인들 집을 방문하니 모두들 일터로 나가고 집에는 강아지만 있었습니다. 강아지와 예배드릴 순 없는지라 어떻게 하나 고심하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좋다. 교인들이 농사일을 하는 농장으로 찾아가자. 밭고랑에서 논바닥에서 같이 일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예배도 드리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업복 입고 고무신 신고 목장갑을 끼고는 호미 하나 들고 교인들의 일터를 찾아갔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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