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이 장안문 앞을 통과하는 능행차 재현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정조대왕이 장안문 앞을 통과하는 능행차 재현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수원에 신읍이 건설되고 5년이 지난 1794년 새해가 되면서 화성 건설사업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795년(을묘년)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회갑을 맞고, 정조가 왕위에 오른 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회갑연은 농사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윤2월 화성행궁으로 결정됐다. 회갑연을 위해서는 궁중음악과 궁중무용, 궁중음식이 필요했기에 1794년 12월 11일 정리소(整理所)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해 준비했다.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은 잔치를 위한 6000여 명에 이르는 많은 인원이 참여해야 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서울에서 수원까지 행차해야 했다. 이 때까지 서울에서 수원까지는 과천을 거치는 제주대로(삼남길)를 이용했다. 

당시 험한 과천의 남태령을 넘기 위해서는 도로 관리에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길이 험해 6000여 명이 수원을 찾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이 시흥과 안양을 거치는 시흥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철저한 준비 끝에 1795년 윤2월 4일 한강에서 배다리를 건너는 도강 예행연습을 가졌다. 정조는 이 자리에서 신하들에게 과잉충성을 염려해 지침을 엄명했다.

첫째, 먼 곳에서 진이(珍異)한 음식을 구해다 바치지 말 것.

둘째, 음식 맛을 일반 시중의 습속을 따라 사미(奢靡, 사치하고 화려함)하게 내지 말 것.

셋째, 각 참(站, 역마을)은 개인적으로 물건을 진상하는 사헌(私獻, 사적으로 바치다)을 절대로 금할 것.

넷째, 여령(女伶, 기생)과 정재(呈才, 대궐안 잔치때 벌이던 춤과 노래)들은 각도에서 뽑아 올리지 말고, 내의원, 혜민서, 공조, 상방(尙房)에서 역을 지는 사람 중에서 약간 명을 뽑고, 화성 여령을 반반으로 배정할 것.

다섯째, 악공(樂工)과 여령들의 복식은 깨끗하게 하되, 화려하지 말 것.

여섯째, 왕의 진찬(進饌, 수라상)은 10여 그릇이 넘지 않도록 할 것.

일곱째, 연악(宴樂, 잔치음악)은 법악(法樂, 규정된 음악)과 다르므로 간편하게 하고, 악기도 서울과 화성에 있는 것을 보수해서 쓸 것.

정조는 그러고서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행차 하루 전인 윤2월 8일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살피게 했다. 

정조의 화성행차는 8일간에 걸쳐 진행됐다.

첫째날(윤2월 9일), 정조는 창덕궁 영춘헌에서 나와 수정전에 가서 할머니(정순왕후)께 인사를 올렸다. 정조는 할머니가 궁에 계시기 때문에 자신의 비(妃, 효의 왕후 김씨)를 궁궐에 남게 했다. 그리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누이인 청연군주, 청선군주만을 대동하고 궁을 나섰다.

묘정(卯正, 오전 6섯시)에 세 번째 북이 울리자 정조는 융복(戎服, 군복)을 입고 말을,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두 누이는 가마를 탔다. ‘원행을묘정리의궤’ 반차도에 나타난 인원은 총리대신 채체공을 비롯, 1779명에 달하고, 말도 779필이나 됐다. 실제 잔치에 참여한 인원은 60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4500여명이 군인이며, 이중에서도 장용영 군사가 3000명에 이른다.  

반차도에서 볼 수 있듯이 수백 개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115명의 기마악대가 연주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1779명의 행렬은 어림잡아도 1km는 넘었을 것이다.

한강에 배다리를 놓은 모습. 정조대왕능행차 공동재현 서울구간으로 배다리를 설치하여 통과하는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한강에 배다리를 놓은 모습. 정조대왕능행차 공동재현 서울구간으로 배다리를 설치하여 통과하는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어가행렬은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에서 출발해 보신각 앞길을 통과, 청계천 대광통교와 소광통 돌다리를 건너 숭례문으로 이어졌다. 용산 방면에 이르자 구경꾼들이 언덕에 모여들었다. 정조는 이들을 막지말라고 명했다.

이어 한강 배다리에 이르렀다. 배다리 중간에 있는 홍살문에 이르자 정조는 말에서 내려 혜경궁 가마에 가서 문안을 드렸다. 정조는 배다리를 건너자 용양봉저정에 먼저 도착, 어머니가 쉴 곳을 점검했다. 정조는 용양봉저정에서 친히 어머니께 음식을 드렸다. 두 군주의 음식도 왕과 같았지만 수행원들의 음식은 직책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노량에서 음식을 들고 휴식을 취한 후 13리 떨어진 시행행궁을 향했다. 시흥은 원래 금천이었다. 회갑연을 준비하고 새길을 내면서 시흥현으로 고을 이름을 바꾸었다.

행렬은 용양봉저정을 떠나 만안현(속칭 만냥고개)을 거쳐 장생현(현 장승백이)을 거쳐 시흥 번대방평으로 향했다. 이어 시흥 문성동(지금의 시흥대로)에 이르러 정조는 행차를 잠시 멈추게 했다. 정조는 혜경궁 주변에 청포장(靑布帳, 푸른천막)을 치게한 다음 ‘미음다반(米飮茶盤, 대추를 삶은 음료수)’을 직접 올렸다. 

정조는 정리사 윤행임을 불러 시흥궁에 먼저 가서 직접 검측하라고 이르고, 잠시 후 내가 먼저 가서 직접 살피겠다고 했다. 정조는 먼저 도착해 행궁을 두루 살피고, 어머니를 기다렸다가 안으로 모셨다. 시흥행궁은 이번 행차를 위해 새로 지었다. 정리사가 석선(夕膳, 저녁음식)을 가져오자 정조는 직접 어머니께 올렸다. 정조는 가는 곳 마다 이 일을 되풀이했다.

정조는 “일기가 청화하고 어머니가 건강하시니 경행(慶幸, 경사스럽고 다행한일)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한 후 신하들에게 음식을 내리면서 “이 음식은 어머니께서 내리시는 것이니 배불리 먹으라”고 했다.

둘째날(윤2월 10일), 시흥 행궁에서 하룻밤을 묵은 정조는 점심을 들기로 한 사근참행궁(의왕시청 별관 자리)으로 향했다. 어가는 지금의 시흥대로를 거쳐 안양을 향했다. 행차를 위해 새로 건설한 만안교를 건너 안양참에 이르자 행차를 잠시 쉬게 했다. 어가는 다시 출발해 사근참행궁(의왕시청 별관)에 도착했다. 정조는 먼저 사근참행궁 시설을 점검하고 어머니를 안으로 모신 뒤 오전 간식인 ‘주다소반과(晝茶別盤果)’와 ‘주수라(점심)을 들었다.

안양 만안교와 설명판. 시흥로는 1794년 4월부터 정조의 지시로 경기감사 서용보가 책임을 맡아 추진했다. (사진=김충영 필자)
안양 만안교와 설명판. 시흥로는 1794년 4월부터 정조의 지시로 경기감사 서용보가 책임을 맡아 추진했다. (사진=김충영 필자)

이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조는 "백관과 군병이 비를 맞을 것이 걱정되지만 이곳에서 화성이 얼마 되지 않으니 오늘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우구(雨具)를 갖추고 출발했다. 행렬은 이어 미륵현에 이르렀다. 원래는 사근고개였으나 원행이 잦아지면서 미륵현으로 바꾸고, 다시 지지대로 바꾼 것이다. 정조는 다시 대열을 쉬게 하고 어머니께 문안을 드렸다. 어가는 다시 출발해 괴목정교를 지나 노송지대를 지났다. 노송지대는 정조의 화성행차가 잦아지자 가로변에 소나무를 심어 조성한 곳이다.

능행차 행렬이 노송지지를 지나는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능행차 행렬이 노송지지를 지나는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진목정에 이르자 먼저 가있던 총리대신 채제공이 어가를 맞이하면서 고취(鼓吹, 힘을 내도록 격려하는 음악)를 연주했다. 이곳에서 어머니께 미음다반을 올렸다. 정조는 이곳에서 갑주(甲冑, 황금 갑옷과 투구)로 갈아입고 장안문으로 들어갔다. 여러 신하들과 화성유수 조심태가 장관(將官, 장수) 이하 군병들을 거느리고 길옆에서 엎드려 맞이했다.

대가(大駕, 임금이 타는 어가)는 장안문에서 팔달문을 향하다가 오른편의 종가(종로)로 방향을 틀어 좌우군영의 앞길을 거쳐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로 들어갔다. 이어 좌익문, 중양문을 거쳐 행궁의 주건물인 봉수당에 도착했다. 

정조는 어머니를 봉수당 옆에 있는 장락당으로 모시고 들어가 주다별반과(晝茶別盤果)를 올리고, 저녁에는 석수라를 올렸다. 드디어 이틀에 걸친 행차가 끝난 것이다. 

정조는 자신의 처소인 유여택으로 가서 시신(侍臣, 가까이 모시는 신하)에게 일렀다. 

“오늘 비에 젖은 것은 미안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매사 언제나 십분 원만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어제는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했고, 내일은 또 경사스러운 예(禮)가 많다. 수십리 길에 비가 오다가 문득 개이기도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더욱이 경작이 곧 시작될 시기에 논두렁이 젖었으니 어찌 농부들의 경사가 아니겠는가”

 

228년이 지난 2023년, 정조대왕 능행차는 서울시와 수원시, 화성시가 공동재현한다.

서울구간은 10월 8일 10:00~18시, 수원구간은 10월 8일~10월 9일 09:30~18:30, 화성구간은 10월 8일 11:00~13:30분에 각각 진행된다. 

깊어가는 가을 조선 궁중문화의 정수인 화성능행차를 놓치지 마시길.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