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어쭙잖은 말이 여전히 넘쳐난다. 할 얘기 안할 얘기 가림도 없다.

국민도 안중에 없다. 오직 당리당략과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

본인은 답답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국민들은 분통이다.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즉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목을 베는 칼’이라 한 격언도 개의치 않는다.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 폐구심장설 안신처처뢰),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라고 한 선현들의 가르침이 무색한 요즘이다.

이를 보며 말에 관한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옛 시조가 생각난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하는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물론 세상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문제에 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화려한 말의 성찬 속 상대에 대한 근거없는 비판(批判)과 호도(糊塗)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칫 설화(舌禍)로 이어져 패가망신도 당한다. ‘거짓’을 가미할 경우 종말은 더욱 비참하다.

헌데도 많은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이 국민을 상대로 반복하고 있으니 말을 삼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마도 인격이 동반돼야 하기 때문일 게다.

상대 비방을 많이 하는 정치인 말 속엔 어딜 보나 신뢰(信賴)를 찾을 수 없다. 아님 말고식도 난무한다.

신뢰는 상호 관계에 있어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덕목이다. 개인 간에 있어서도 그렇고 기업이나 국가 간에서 있어서도 신뢰가 있어야 미래로 함께 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경우에 따라 이를 헌신짝처럼 버린다. 국민이 지켜 보고 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인격이 동반되지 않은 탓일까. 유독 정치권에 말하고 행동이 다른 사람이 많다.

겉으론 애국애족, 뒤로는 사리사욕 챙기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역시 인격이 동반되지 않은 정치 탓일까.

미국의 주목 받는 차세대 시인 ‘제프리 맥다니엘’의 ‘고요한 세상’이라는 시가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의 눈을/ 더 많이 들여다보게 하고/ 또 침묵을 달래 주기 위해/ 정부는 한 사람당 하루에/ 정확히 백예순일곱 단어만 말하도록/ 법을 정했다/ 전화가 울리면 나는 ‘여보세요’라는 말 없이/ 가만히 수화기를 귀에 댄다/ 음식점에서는/ 치킨 누들 스프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나는 새로운 방식에 잘 적응하고 있다/ 밤 늦게 나는/ 멀리 있는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스럽게 말한다/ 오늘 쉰아홉 개의 단어만 썼으며/ 나머지는 당신을 위해 남겨두었다고/ 그녀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 나는 그녀가 자신의 단어를 다 써 버렸음을 안다/ 그러면 나는 ‘사랑해’ 하고 천천히 속삭인다/ 서른두 번 하고 3분의 1만큼/ 그 후에 우리는 그냥 전화기를 들고 앉아/ 서로의 숨소리에 귀 기울인다.”

요즘 넘쳐나는 정치인들의 시답잖은 말을 들으며 시를 읽으며, 말은 꼭 필요하지만 품위 있는 말, 향기가 풍기는 말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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