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천의 옛이름은 '한천'이다. 그리고 ‘유천(柳川)'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다.

고지도인 팔도군현지도(1760년), 조선지도(1767년), 팔도지도(1776년), 해동여지도(1800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원천은 화성을 축조한 정조(正祖)와 연관이 깊다.

이름대로 버드나무와의 연계성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1794년 화성건설 당시 천을 준설한 뒤 북쪽에는 북수문인 칠간수 화홍문을 축조하고 남쪽에는 구간수인 남수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수원천은 화성의 중심을 흐르는 화성의 일부로서 하천 이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이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수원측도(1917년)에는 ‘광교천(光敎川)’으로, 1936년(수원관광지도) 이후부터는 수원천으로 불리고 있다. 

시민들이 생각하는 수원천의 의미는 각별하다. '생명천'으로 부를 정도로 애착과 사랑도 깊다.

수원의 영산 광교에서 발원,  도심을 가로질러 권선구 곡선동과 화성시 진안동의 경계 지점에서 황구지천으로 합류하는 수원천은 길이가 14.5Km에 이른다.

길이 만큼 우여곡절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특히 도심을 가로지르는 구간은 더 하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맑고 시렸던 수질이 혼탁해지면서 일부 구간 복개가 추진됐기 때문이다.

70년대 들어 의욕있게 전개된 정화사업도 소용이 없자 1972년엔 더욱 본격화 됐다. 북수동~매교동 구간 1850m를 폭 30m로 복개하는 사업을 시작으로 1994년까지 20년 넘게 추진됐다.

명분은 도심교통체증 및 주차난 해소였다. 당시 수원천은 심각한 오염으로 악취가 진동했다. 수원천을 덮으면 해결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린격'의 미봉책은 곧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그리고 완공 1년도 안된 1995년 말, 16개 시민단체가 모여 반대운동에 나섰고, 당시 민선시장으로 당선된 고 심재덕씨에 의해 원형 보존의 길이 열렸다.

그러면서 수원천의 가치도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시민들 정화(淨化) 덕분에 썩은 하수나 다름없었던 수원천은 2001년 이후 BOD 2.4ppm , 2∼3급수 정도로 수질이 개선됐다.

송사리, 버들치, 피라미, 밀어, 미꾸라지, 붕어 등 물고기가 가득한 하천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2년 2월 환경부는 수원천을 생태복원 우수사례로 지정했고, 지난 2004년에는 환경부가 주최한 제1회 환경관리 우수 자치단체(Green City) 공모에서 1위로 선정돼 국무총리 기관표창을 받기도 했다.

2010년에는 수원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기 위한 마지막 작업으로 복개 구간을 완전히 철거했다.

2012년에는 홍수로 유실됐던 남수문까지 복원해 수원천 모든 구간을 복원했다. 그리고 수원시민의 사랑을 받는 생태하천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 복원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 그시절'로 머물고 있는 '수원천'의 정체(停滯)에 대해 아쉬워 하는 시민들이 많다.

여름 장마에 점점 취약해져 가고 있고, 상징물이나 산책로 등 주민 편익시설도 노후화 되고있어서다.  

하천 환경에 대한 정화도 점점 방치되면서 수질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다 수원천이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 조화를 이루며 젊은이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재방문 외지인들조차 예년과 비교 '거기서 거기'라는 실망감을 표할 정도다.

“매년 여름장마가 걷히면 반드시 개울을 쳐서 (물길을)소통시키는 것을 연중행사로 삼았다”라는 ‘화성성역의궤’의 내용을 근거로 9월 ‘수원천 개울치기’ 민속행사가 '하천 정화'의 전부가 되선 안된다.

수원천은 수원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다. 내년엔 좀더 관심을 갖고 '새로운 수원천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원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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