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육아(祖孫育兒)의 역사는 오래됐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중기 학자 묵제((默齋)  이문건은 1551년부터 1566년까지 손자를 양육하며 그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육아일기로 알려진 '양아록(養兒錄)'이다. 일기 형태지만 시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육아 과정의 구체적 상황과 체험, 감정 등을 진솔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사대부가 쓴 유일한 육아일기라 해서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비슷한 시기  퇴계 이황도 손자 이안도에게 약 16년 동안 125통의 편지를 보내 손자를 교육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선조들은 이처럼 조부모가 자녀를 키워 본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세대를 건너 손주를 양육하고 돌보는 것을 ‘격대교육’ 또는 ‘격대육아’라 불렀다.

그리고 여러가지 형태로 변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부모가 손자, 손녀를 맡아 잠자리를 함께하면서 교육한다는 격대교육(隔代敎育), 지금보다는 덜했지만 동서고금이 따로 없이 존재했다.

과도하게 욕심을 부리는 부모와 달리 조건 없는 사랑과 무한한 지지를 주는 조부모의 격대 교육은 장점이 많다고 한다.  

격대교육을 경험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자존감이 높고, 도전의식이 강해 학업성적이 좋고 성인이 된 후에도 성취도가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유명인의 경험담도 많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내가 편견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외할머니 덕분이었다”며  조부모에 의한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빌 게이츠 역시 “할머니와의 대화와 독서가 나를 만들었다”라며 격대 교육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연구로도 증명되기도 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엘더 교수팀은 조부모와 손자녀의 상관관계를 광범위하게 조사한 사례로 유명하다.

그 결과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또 자주 접촉할수록 아이의 성적과 성인이 된 후의 성취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심리적 웰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노인들의 ‘황혼 육아’는 다양하게 트랜드화 하고 있다. 덕분에 오래전 새로운 유행어도 생겨났다.

2014년 국립국어원이 공개했던 ‘할빠’와 ‘할마/할맘’ 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행하고 있다.

손주를 직접 키우는 ‘할아버지아빠’와 ‘할머니엄마’의 줄임말이다.

맞벌이 아들이나 딸의 육아 부담을 떠안은 노년의 수고로움이 묻어난다. 조부모의 육아 참여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세계적 추세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 은퇴자협회(AART)에 따르면 38%가 자신을 손주 돌봄자로 여긴다고 응답할 정도다.

관련 학계에 ‘집중 손주 돌봄’이라는 학술 개념이 새롭게 등장할 정도라니 보편화된 황혼육아를 가늠할 수 있다.

'늦맘'이 늘면서 가족들의 육아 참여 역시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친인척 육아조력자 구성을 보면 할머니·할아버지가 96.5%로 대다수였다. 아울러  고모·삼촌·사촌형제(3.5%) 등도 조카 혹은 동생 돌봄에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중속 돌봄의 사회적 가치를 제도적으로 인정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물론 일부 지자체에서 ‘손주돌보미’라는 명칭을 붙여 수당도 지급한다.

육아교육을 25시간 받고 한 달에 40시간 이상 손주를 돌보시는 노인들에게 최대 24만원의 수당을 지급해하고 있다.

서울에선 조부모뿐 아니라 이모·삼촌 등 4촌 이내 친인척이 아이를 돌보는 경우도 비용을 지급중이다. 하지만 한시적인 미봉책이 대부분이다.  

이젠 사회적으로 조부모의 손주 돌봄을 지원하고, 이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조부모 돌봄을 지원하면 돌봄 부담이 가족에게 고착된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조부모가 지나친 부담에 시달리지 않고 손주를 돌볼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이에 대한 영국의 ‘처방법’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영국은 2011년부터 조부모가 12세 미만 손주를 돌보는 기간을 연금에 기여한 기간에 포함시키고 있다.

조부모의 손주 돌봄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그 손실을 보전해주는 대안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Age UK’ ‘Grandparents Plus’ 같은 자선단체가 조부모 돌봄에 관한 연구를 지원하고,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다양한 도움도 제공하고 있다.

우리로선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올 한해가 얼마남지 않았다.

'애본 공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1년내내 '돌봄 사랑'을 쏟아부은 조부모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두배로 전하는 연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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