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이 끌려간 곳은 남산 중턱에 있는 중앙정보부 건물이었습니다. 지하실 천정이 낮은 방에 한 방에 한 명씩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평생에 처음 당하는 일이어서 낮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어깨를 한 켠으로 모로 누웠더니 천정에서 섬찟한 소리가 들렀습니다.

"김진홍 바로 누워"

어디서 들리는지도 모르게 저음으로 들리니까 가슴이 섬뜩하였습니다. 다음 날부터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2 달간이나 조사가 이어졌습니다.

그 2 달간 힘이 들어 기도가 오로지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 저 천국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힘들어 더 견디기 어렵습니다.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내 삶을 이끌어 준 5 번째 말씀"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그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더 원하리요" (누가복음 12장 49절)

내가 수감된 방은 서대문 구치소의 0.7평인 작은 방이었습니다. 방이 좁아 보건 체조를 할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밤 9시경이 되면 73번 나와 하며 철문이 열리면 나가서 포승줄에 묶여 검은 승용차에 실려 사직터널을 지나 시청 앞을 지나 남산 중턱에 있는 취조실로 실려 갔습니다.

나는 시청 앞을 지날 때면 시청 앞 프라자호텔이 골조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을 보며 지나다녔습니다. 언제 바깥으로 나가 자유로운 나날을 보낼 날이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녘에 방으로 돌아올 때면 졸면서 걷습니다. 그 해엔 눈이 많이 와서 졸면서 걷는 걸음이라 눈을 푹푹 밟고 걷습니다.

고무신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와 양말이 젖었습니다. 방으로 들어오면 양말을 벗고 물기를 말리고 자야 하는데 쏟아지는 잠에 그냥 잠들어 버립니다.

그사이 발이 얼어 동상이 심해졌습니다. 동상은 추울 때는 오히려 괜찮은데 이부자리에  발이 들어가게 되면 가렵기 시작합니다.

밤마다 발가락을 긁다가 잠들곤 하여 열 발가락이 부어올랐습니다. 드디어 2월 23일이 왔습니다.

1974년 2월 23일입니다. 그날은 2월 달 늦추위가 와서 너무너무 추운 날씨였습니다. 너무 추우니까 다리뼈를 칼로 후벼내는 듯이 통증이 왔습니다.

뒷머리가 띵하고 사고가 정지되는 듯하였습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이길 길이 없어 성경을 펼치고 성경에 등장하는 '불' 자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맨 처음 나온 말씀이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모세가 만난 불입니다. 80세 된 모세가 처가살이 하면서 양떼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꺼지지 아니하고 계속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그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세야 너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발에 신은 신을 벗어라"

여기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구약에서 불 자를 차근차근 찾아나가던 내가 신약에 이르러 누가복음 12장에서 불 자를 만났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눈이 확 열렸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던가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그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더 원하리요" (누가복음 12장 49절)

나는 모태신앙으로 평생 교회를 다니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설교를 하며 지났는데 전에는 이런 말씀이 성경에 있는 줄을 모른 채로 지났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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