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1학년에 다닌 1년 동안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신학교를 계속 다녀 목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중퇴하고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살며 전도자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래서 1학년 학년 말 시험이 시작되는 날 나는 짐을 싸서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동급생들이 진심으로 만류하였지만 나는 '사나이는 결단이다'는 허세를 부리며 대구로 갔습니다.

대구에 가는 길로 신생공업사란 철공소에 작업부로 취업하였습니다. 자동차에 사용하는 볼트, 너트 등을 만드는 공장으로 800여명 노동자들이 일하는 회사였습니다. 회사 사장님이 교회 장로님이었고 회사 임원 전체가 장로 아니면 집사였기에 전도하기에 안성맞춤인 회사라 여겨져서 신생공업사에 들어가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길가에서 20분 만에 나오는 증명사진 찍어서 붙이고 학력 란에 중졸이라 쓴 이력서를 들고 사무실로 갔더니 이력서를 읽고 내 얼굴을 보더니 내일부터 출근하라 하였습니다. 

내 속셈은 이왕지사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더불어 살며 전도하는 삶을 살자고 작정하였기에 가장 노동 환경이 열악한 철공소로 들어가자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 시절 거듭거듭 다짐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

철공소로 들어가서 밑바닥 노동자들 속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자, 동료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섬기며 죽는 밀알이 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취업이 된 다음 날 이른 아침 출근하였더니 나를 용광로가 있는 지하실 작업장에 화부(火夫)로 배치하였습니다. 그날부터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일하게 된 나는 쉬는 시간 틈틈이 '예수 이야기'로 말을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지 못한 반감이 되돌아 왔습니다.

내가 예수에 대하여 이야기를 걸면 즉각 반응이 나오기를 "뭣이라고? 예수 믿으라고? 예수라면 신물이 나여. 내가 자식 낳아 예배당에 보내면 사람 새끼가 아니여."

이런 식으로 격한 반응이 나오기에 왜 그럴까를 생각하다 시간이 지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가 매일 아침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30분간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시간에 출석치 않으면 인사 고과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 시간 30분이 노동 시간에 포함되지 아니하였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이른 아침 30분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새벽잠 30분을 빼앗는 셈입니다.

그런데 임금은 동종의 다른 철공소에 비하여 10% 정도 낮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나누는 '예수 이야기'에 반발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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