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안덕(靑松 安德) 사부실 마을이 내가 자란 고향입니다. 나는 모태 신앙(母胎信仰)입니다. 어머니 태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하여 그렇게 부릅니다.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께서 사부실 마을에서 머슴살이를 하시던 여름 어느 날 논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총각 머슴이던 때였습니다.

지나던 미국 선교사가 불러내어 복음을 전한 것이 우리 집안이 크리스천 집안이 된 시작이었습니다. 사부실 마을에서 교회 다니는 가정은 우리 집안뿐이었습니다.

외갓집과 우리집 두 집이었습니다. 우리집이래야 아버지는 일본 동경에서 30대 나이에 소천(召天)하시고 어머니께서 외갓집 문간방에서 삯바느질하시며 우리 4남매를 길렀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고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신앙이 독실하셔서 밤낮으로 기도하시며 그 어려움을 이겨내셨습니다.

고향에서 유년 주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교회에 열심이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하여 영신중학교, 성광고등학교 다니던 때도 대구동신교회 학생회장까지 하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고 철학과를 다니면서 신앙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철석같이 믿었던 신앙심이 회의와 갈등이 스며들어 날로 심하여졌습니다.

그래서 불교에도 기웃거리고 염세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도무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젖어 고뇌와 방황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 책상머리에 적어 놓고 멍하니 바라보곤 하였던 성경구절이 로마서 7장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구절이 영문으로 읽으면 더 실감이 납니다."What a wretched man I am! Who will rescue me from this body of death? 나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 이 사망의 자리에서 누가 나를 구해 줄 수 있겠는가?"

'wretched man'이란 말은 풍랑을 만나 갯벌에 꼴아 박힌 배의 모습을 일컫습니다. 그런 고뇌와 방황의 날들이 내 영혼을 좀 먹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방황하니 청춘이다'는 말도 하였습니다만 실로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암울하였던 시절에 햇빛이 비쳐들기 시작하였습니다.

1968년 12월 4일 날짜도 분명히 기억합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1장 7절 말씀이 내 영혼에 지진을 일으켰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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