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책을 가지고 다니는 엿장수에게 '그가 그 책을 읽을 리는 없을 테고 책이 예쁘니까 엿 상자 위에 둔 게로구나' 하는 짐작으로 그에게 그 책을 나에게 주라 하였더니 그가 놀라는 눈으로 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이 책이 하이데거의 책인 줄을 어떻게 아세요?" 하기에 내가 더 놀랐습니다.내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이 책이 하이데거 책인 줄 알고 갖고 다니시는 거요?" 이래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놀라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자기 소개를 하기를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시내 여자고등학교에서 독일어 선생으로 있다가 여학생들이 독일어에 흥미가 있을 리 없기에 떠들고 산만하니까 따분한 생각이 들어 그만 두어 버리고 자신은 부모 유산도 있고 하여 세상 체험 쌓으려고 이러고 다닌다 하였습니다.

우리 둘은 의기투합하여 손수레도 아이스케키 통도 그 자리에 두어 버리고 막걸리 대폿집을 찾았습니다.

막걸리 한 잔을 들면서 그가 진지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나에게 내가 살아가야 할 의미를 일러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평생의 머슴 노릇 하겠수다."

"형씨 말이 바로 내 말이요. 나도 지방 대학 철학과 조교 자리를 버리고 무언가 내 인생을 통째로 던질 수 있는 것을 위해 지금 이러고 있수다."

그 때 나눈 대화는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화두(話頭)가 되었습니다. 여름이 지나니 아이스케키 장사를 접고 쥬리아 화장품 회사에 들어가 화장품 외판원을 하다가 마치 초상집 개처럼 쏘다니다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하루는 내가 내 정신이 아니라 정신질환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당시에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청량리 뇌병원의 최신해 박사를 찾았습니다.

어렵사리 최신해 박사께 특진을 받게 되어 내가 정신병인 것 같아 박사님을 찾아왔노라고 여쭈었더니 이것저것 30분이 지나도록 물었습니다.

박사께서 결론으로 일러 주기를 "자네는 정신병이 아닐세. 정상적인 사람이네" 하기에 내가 의아하여 "박사님, 제가 정신병인 줄을 알고 왔는데 아니라니요?"하였더니 최 박사께서 확실하게 일러 주었습니다.

"자기 입으로 정신병이란 사람은 다 정상인 사람이네. 자기가 정신병이 아니란 사람들이 정신병자인 거네." 이렇게 일러 주기에 나는 혼자 투덜거렸습니다.

"이름만 났지 돌팔이 아냐? 본인이 정신병이라는데 아니라 하니 돌팔이 의사인 게지." 라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그 후 몇 달을 더 서울서 떠돌다 대구로 내려 왔습니다. 그런 세월이 2년이 지난 1968년 12월 4일 밤, 나에게 방황의 세월이 끝나고 내 영혼에 햇볕 드는 날이 왔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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