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대구 계명대학교 맞은편에는 화장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시외로 옮겼습니다만 그 시절에는 철학과 강의실에서 창밖으로 눈을 돌리노라면 화장터 굴뚝에서 시체를 태운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면 화장터로 가서 시체가 타서 한 줌 재로 바뀌는 과정을 살피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껴보곤 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철학과의 조교(助敎)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조교실에서 철학 서적 15권을 쌓아 놓고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버트란드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존 듀이의 저서 등이었습니다.

그 책들을 보며 이 책들에 적힌 내용에 내 인생을 걸 수 있을 것인가? 철학이란 학문이 한 번 사는 나의 삶을 행복하게 하여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회의와 고뇌에 젖어 들던 나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바닥으로 내려가 인생 체험을 쌓으며 나 자신의 삶에 대하여, 나의 미래에 대하여, 그리고 철학에 대하여 답을 찾고 길을 찾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한 일이 아이스케키 장사였습니다.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서울역 뒤편으로 비탈길을 올라가면 소이국민학교가 나옵니다.

나는 소이국민학교 담벼락에 자리를 잡고 "아이스케키 2개 10원"하며 지냈습니다. 잠자리는 서울역 앞 노동자들의 합숙소로 가면 최저 가격으로 잠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는 뜨거운 햇볕을 밀짚모자로 가리고 "아이스케키 2개 10원"을 외치고 있는데 나와 같은 나이 또래의 한 젊은이가 엿 상자를 실은 손수레를 끌며 고갯길을 힘들게 올라왔습니다.

목에 걸고 있는 수건으로 얼굴에 땀을 닦으며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젊은이, 내 곁에 와서 쉬었다 가세요. 내가 아이스케키 하나 줄게요"내 말에 젊은이는 옆 자리에 손수레를 세우고 내가 주는 아이스케키를 받아먹으며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끌고 온 손수레의 엿 상자 위에 철학책이 한 권 놓여 있었습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쓴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Was ist Metaphysik)?' 란 책이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 책을 읽지는 않을 테고 엿장사 하다 예쁜 책이 나오니까 그냥 엿 상자에 둔 것이겠지 생각하고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 저 하이데거의 책, 읽는 책 아니지요? 내가 아이스케키 몇 개 줄테니 나에게 주실라요?" 그런데 내 말에 그가 아이스케키 먹던 동작을 멈추고 나를 의아스런 눈으로 보며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이 이 책이 하이데거 책인 줄 어떻게 아시요?"그의 말에 나는 더 놀라 물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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