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특례시와 관련 단체들 작은 기념행사라도 마련해야
1997년 12월 6일,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날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수원 화성은 창덕궁과 함께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
‘영원한 수원시장’으로 불리는 심재덕 수원시장은 ‘관광산업이 미래 수원시의 미래 먹거리’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수원시를 세계 속의 관광도시로 만들기 위해 1996년부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등재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1997년 6월 21일 외무부로부터 “이번 유네스코 이사회에서 화성의 세계유산 등재가 유보될 것 같다”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이보다 앞서 1997년 3월초에 국제기념물유적협회 니말 데 실바(Nimal De Silva)가 화성을 실사하기 위해 수원을 방문했지만 등재가 유보됐다.
‘화성 그 자체로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주변경관이 너무도 좋지 않아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6.25 전쟁 때 파괴된 곳이 많아 화성을 ‘온전한 유적’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심재덕 시장은 1997년 6월 23일 유네스코 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박흥수 수원시청 문화재팀장, 연합뉴스 박두호기자만 동행했고,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이 만든 ‘화성성역의궤’ 영인본과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방패연을 들고 갔다.
심 시장은 도착 하자마자 호주, 일본, 독일의 심사위원 등과 면담 했다. 유네스코 임원들은 심재덕 시장의 적극적인 의지에 감동 받았다.
심 시장은 화성을 보호하기 위해 대대적인 정비 사업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심사위원들은 심 시장의 진정성을 느끼고 화성을 창덕궁과 함께 집행위원회 본안으로 상정했다.
심 시장은 뒷날 심사위원들을 ‘협박’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만약 여러분들이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지 않으면 저는 곧바로 수원으로 돌아가 화성을 허물어 버릴 것입니다. 화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저와 시민들 때문이 아니고 바로 당신들 때문이란 것을 알기 바랍니다”라고.
그리고 이사회는 화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권고’했다. 사실상의 ‘등재’였다.
이때 만약 심 시장이 파리로 직접 가서 집행위원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지학자 이종학이 사비로 발간한 ‘화성성역의궤’ 영인본도 큰 도움이 됐다고 전해진다.
심 시장은 얼마 후 동아일보에 이런 글을 기고했다.
수원 화성(華城)의 세계유산 등록 확정으로 수원시는 온통 축제분위기다...(중략)...이집트의 누비아 유적,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중국의 만리장성, 인도의 타지마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세계적인 문화관광유산으로 새로 태어난 셈이다...(중략)...우리는 시민의 생활 속에 항상 스며 있는 화성의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산속에 자리 잡은 남한산성이나 행주산성도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한 탓으로 문화재적 가치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 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야 한다. 화성의 세계문화유산 등록도 뜻있는 전문가와 문화재관리국 관계자 등이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화성성역의궤’라는 귀중한 기록에 따라 완벽하게 복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하략)...
드디어 1997년 12월 6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화성은 창덕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등재됐다. 심재덕 시장으로 인해 수원은 세계유산 보유도시가 됐고 매년 국내외 관광객들이 증가하는 문화와 역사가 있는 관광의 도시가 됐다.
이와 관련 당시 김주홍 수원박물관장은 수원시박물관사업소 소식지 ‘물고을’ 2017년 겨울호 특별기고 ‘수원화성 세계유산 등재 20주년-고(故) 심재덕 시장, 소원을 이루다’를 통해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세계유산위원회 총회가 열리던 그 날 심 시장은 상광교동 경로당에서 지역주민들과 지역의 현안이었던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관련 민원 및 마을 진입로 확장 개설, 광교저수지 수질개선 등에 대한 해결방안 모색을 위해 ‘시장 초청간담회’를 진행 중이었다....(중략)...심시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걸려온 국제전화였다. 통화를 마친 심 시장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울먹였다. “나의 소원이 오늘 이루어졌다.”하며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중략)...심 시장은 잠시 후 감정을 추스리고 “방금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 등재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저의 소원은 1987년 수원문화원장 이후로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등재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고 말하며 어린아이처럼 수줍어하면서 천진난만하게 웃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1997년 12월 6일, 수원특례시가 민간단체인 화성연구회 등과 함께 이날을 기억하고 작은 기념행사라도 열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