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걷다보면

겨울을 견딘 꽃들이

향기로 말을 걸어와요

 

벚꽃의 떨림, 진달래의 열정, 목련의 하얀 결심, 라일락의 속삭임,

저마다 향기로 봄을 노래해요

 

젖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향기는

마침내 불어오는 바람 따라 천리 길을 가요

 

그날의 교실

창밖의 라일락 향기는 깊게 속삭여요

홍조 띤 얼굴의 떨림에 닿던 

말할 수 없는 마음 하나

 

향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거지요

향기로 가득 찬 봄은 

더 깊은 곳으로 시냇물을 흘려보내요

어느 먼 기억을 안고 오는 이도 있어요

 

가난해서 배움이 고팠던 아이에게 자신의 봄을

나눠 준 한 선생의 조용한 숨결

아이는 자라 마음에 스민 향기를 나누며

오늘을 살지요

 

향기는 말이 없지만

말보다 더 오래 더 멀리

봄을 물들이지요

  - 「향기의 길」/이정희

 

 전지 시점의 화자는 창밖 라일락 향기가 교실에 유입돼 퍼지던 어느 봄날에 한 ‘아이’가 그 향기와 다르지 않은 ‘선생’의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봄날의 ‘향기’인 그 ‘마음’은 ‘선생’의 ‘조용한 숨결’이기도 한데, 이후 그 ‘아이’에게서 꺼지지도 잦아지지도 않았다. ‘아이는 자라 마음에 스민 향기를 나누며/오늘을 살지요’에서 알 수 있듯, 성장한 ‘아이’는 그 ‘선생’의 그 ‘마음’으로 산다. 이웃에 그 ‘향기’를 나누며.  

 우리는 이 시에서 교육의 진정한 역할과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위상을 새삼 확인하며 깊이 허여하기도 하지만, 라일락 향기처럼 은은하고 강렬한, ‘선생’이 제자 ‘아이’를 배려하는 모습에 얼핏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이’가 그날 ‘선생’처럼 ‘봄’의 ‘마음’과 ‘향기’를 오래 지속하고 발휘하는 이유에 연관시켜서. 

 화자는 그때 ‘아이’가 ‘가난해서 배움이 고팠’던 상태였기는 하지만, 지식 전수보다는 ‘자신의 봄을/나눠준’ ‘선생’의 ‘조용한 숨결’에 더 기인한다고 한다. ‘조용한 숨결’은 ‘선생’의 태도에 내포되어 있던 제자 사랑의 파동일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아이의 ‘얼굴’을 ‘홍조 띤’이라 묘사하며 또 떨렸다고 한 것이다. ‘선생’의 ‘조용한 숨결’은 또 ‘선생’의 ‘말할 수 없는 마음’이기도 하며, ‘아이’의 ‘마음에 스민 향기’였다.  

 그런데 ‘선생’의 ‘향기’는 4연에서 강조된 ‘라일락’ 향기만이 아니다. 우리는 그 전후를 다시 읽어야 한다. 즉 ‘벚꽃’, ‘진달래’, ‘목련’ ‘라일락’의 ‘향기’이며, 그 ‘향기’의 취지는 각각 ‘떨림’, ‘열정’, ‘하얀 결심’, ‘속삭임’이다. 혹독한 ‘겨울을 견딘’ 연후의 승화이자 성취. ‘선생’이 왜 ‘자신의 봄’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는지 이유가 스스로 명백하다. ‘선생’의 ‘향기’는 생명을 고무하고 진작하기에 충분하다. 그날 ‘아이’는 시선과 미소를 포함해 ‘선생’의 태도에서 교과의 주제 이해에 필요한 해설만 접수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해서 배움이 고팠던 아이에게 자신의 봄을/나눠 준 한 선생의 조용한 숨결’에서 그 ‘가난’도 그야말로 빈곤만이 아니라 성인으로 ‘자라’나기에 필요한 ‘마음’의 양식으로서의 ‘향기’, 그 결핍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마음과 마음의 소통을 다룬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시이고, 대상화된 ‘아이’는 아무래도 화자가 회고하는 어린 자신이라고 하겠다. ‘향기는 말이 없지만/말보다 더 오래 더 멀리/봄을 물들이지요’에서도 우리는 화자와 ‘아이’의 시각이 복합된 동일시를 느낀다. 그리하여  우리는 ‘떨림’, ‘열정’, ‘하얀 결심’, ‘속삭임’으로 현재 ‘봄을 물들이’고 있는 화자, ‘선생’의 애호와 격려의 그 ‘마음’을 지속하는 성장한 ‘아이’를 성원하게 된다.  

 이 시는 꽃핀 봄날에 읽어도 좋지만 한파에 마음마저 움츠러드는 겨울에 그것도 아예 그 초기에 읽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선생’과 화자처럼 ‘봄’에 사람들에게 ‘향기로 말을 걸’고, 또 ‘향기’로 ‘노래’하려면, 우리는 ‘겨울’을 잘 지내야 한다. 쑥스럽기도 하지만 ‘겨울을 견딘 꽃들처럼’. 그래야 봄에 향기가 더 맑고 짙어진다는 이치를 우리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시를 읽으며 이 메시지를 우리도 ‘조용한 숨결’로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차분하고 온아한 어조와 리듬도 그렇지만 ‘젖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향기’, ‘향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는 거지요’같은 구절들도 그러하다. 나아가 ‘봄’에 그런 ‘향기’로 우리도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으로 생명의 ‘시냇물’을 ‘흘려보내’며, ‘어느 먼 기억을 안고 오는 이’를 ‘홍조 띤 얼굴’로 상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흐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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