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네, 수원에 이런 곳이 있습니다"…같은 수원, ‘다를’ 겨울

지동시장 순대타운에서 창룡문까지 뻗은 수원화성 오른편엔 지동이 있다.
한쪽에는 1154가구 규모의 신축 아파트가 들어섰고, 다른 한쪽에는 얼마 전에 들어선 팔달경찰서가 위용을 뽐낸다.
그 사이에는 옛 모습의 지동이 남아 있다. 기울고, 갈라지고, 파였다.
겨울은 같은 날 찾아오겠지만, 견뎌야 할 추위는 다를 것이 뻔했다.

4일 찾은 수원화성 문화유산보호구역 내 지동 주택가.
좁은 골목을 따라 낡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건물 사이에는 비좁은 틈이 이어졌고, 벽에는 금이 가 있었다. 세월이 동네에 남긴 주름 같았다.
현장을 안내한 이승인 주민 비상대책위원장(55)은 주택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짚어 보였다.
외벽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녹슨 철근이 드러났다. 갈라진 담장을 메운 흔적 주변으로는 다시 균열이 뻗어 있었다. 한 주택은 건물을 받치는 구조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집 안도 다르지 않았다. 누수로 천장 마감재가 떨어져 나갔고, 내부 자재가 드러난 곳도 있었다. 천장을 떠받치는 금속 지지대는 집의 상태를 위태롭게 보여줬다.
지붕에는 비닐과 천막을 덧씌우고 벽돌과 돌로 눌러 놓았다. 비가 새면 덮고, 갈라지면 메우는 땜질식 보수의 흔적이었다.

이마저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집이 무너질까 두려워 기존 주택을 떠나 농막에서 생활하는 주민도 있단다.
실제 붕괴 위험을 판단하려면 안전진단 등의 행정 절차가 필요하다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주민들의 마음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거주자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고령층이라고 한다. 일부 주택에는 도시가스조차 공급되지 않는다. LPG 용기가 놓인 집들이 있었고, 연탄이나 기름보일러에 의존하는, 도시가스가 연결되지 않은 가구도 허다했다.

그렇다고 돈을 들여 집을 제대로 고칠 수도 없다. 결국 철거될 집들이기 때문이다.
2021년 1월 20일 문화유산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됐다. 수원시는 지동·남수동 일대 299필지, 2만6915㎡의 토지와 건축물을 매입·철거한 뒤 수원화성 주변의 원래 지형을 복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정 6년째인 올해까지 지동 사유지 228필지 가운데 매입을 마친 토지는 56필지, 24.6%에 불과하다.
보상 시기를 알 수 없으니 집을 고치기도, 팔고 떠나기도 어렵다. 장래 수용될 집을 사려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 거래마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비대위의 설명이다.
비대위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영진 의원(더민주, 수원병)과 여러 수원시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주민들은 하루하루 붕괴의 불안 속에 살아가지만, 수원시를 향한 외침에는 '순차적으로 보상하겠다'는 답변만 메아리처럼 돌아온다고 했다.

기다림이 언제 끝날지도 불분명하다.
수원시가 잠정적으로 설정한 사업 준공 시점은 2045년이다. 당초 사업기간은 2030년까지였지만, 여러 이유로 앞으로 19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장담하기 어렵다.
아직 보상에 착수하지 못한 토지는 137필지라고 한다. 수원시는 이곳에 90채 이상의 주택이 있고, 거주자도 2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내년도 토지매입에 반영된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10억원에 불과하다. 수원시 관계자는 이 돈으로 많아야 3필지 정도를 매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한 해 3필지씩 137필지를 매입하면 보상 마무리까지 약 46년이 걸린다. 향후 예산 확보에 따라 기간은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 수준이 이어진다면 2045년 준공조차 불투명하다.
올해 70세인 주민이 2045년까지 기다린다면 90세에 가까워진다. 46년 뒤라면 116세다.
수원시도 어려움을 인정하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지동 일대에 주택이 밀집해 있어 현재 예산으로 보상을 추진하기 어렵다며, 노후주택에 대한 우려와 함께 보상을 서두를 경우 많은 주민이 한꺼번에 생활터전을 떠나야 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보상절차에 착수하기 전까지 건축물의 유지·보수는 원칙적으로 소유자의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민들에게는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목돈을 들여 고치자니 언제 철거될지 모르고, 그대로 살자니 집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불안하다.
이승인 비상대책위원장(55)은 "집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불안해하는 주민들이 있는데 수원시에서는 순차적으로 보상하겠다는 말만 한다"며 "이미 철거가 예정된 집을 고쳐 살 수도, 팔고 떠날 수도 없는데 주민들에게 언제까지 기다리라고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1154가구 규모의 신축 아파트가 첫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 팔달경찰서에서는 두꺼운 벽 안에서 온풍기의 온도를 조절하며 겨울을 스쳐 보낼 것이다.
그 사이 주민들은 곧 찾아올 한기를 막으려 비닐에 난 구멍을 다시 비닐로 덧대며 또 한 번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같은 수원, '다를'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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