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 魯迅 )이 이야기한 희망의 길이지만 함축된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면 현실 속에서의 길은 무엇인가.

각자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내기 위한 방도(方途) 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래서 수많은 편린(片鱗)들이 쌓이고 녹아있다는 평가를 받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길을 찾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노력중이다.

때론 인생 길을 찾기 위해, 어느땐 갈 길을 찾기 위해 순간순간 고민하고 번민한다. 지상의 길을 보며 동시에 마음의 길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길 위에서 수없이 헤매게 된다. 문득 세상이 나를 버린 듯 싶고, 내가 멀고 먼 이역에서 한없이 헤매고 있다고 여겨질 때, 더 그렇다.

다행인 것은 그러다 작게나마 자기만의 길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의 종점에  다다르지 못하고 헤맨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나온다.

마음의 길 찾기는 더 어렵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내가 찾아헤맨 것은 나 자신이었다”라고 술회한 것을 보면  실감이 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길은 정형화 되지 않은 다양함이 있어 사람 맘을 행복하게 한다.

철학적 의미를 떠나 그냥 봐도 좋다.

강가 산속 또는 솔숲 사이에 난 오솔길, 돌담을 따라 꾸불꾸불 이어진 마을의 고샅길, 호젓한 산길,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들길, 강변에 펼쳐진 자갈길, 비 내린 황톳길의 진창길, 가로질러가는 지름길, 시원히 뻗은 곧은 길, 산티아고길 같은 고난과 성취의 길 등 인생의 희로애락처럼 여러 형태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어서다.

우리 맘 속 길도 이처럼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원하는 곳을 찾아가는 수월함이 혼돈을 상쇄할 수 있으니 즐거움의 동반도 기대되어 더하다.

많은 사람들, 특히 동양 철학에선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중국의 시인 이백은 한발 더 나가 현실적 표현을 했다.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과객이라”라면서 인생이 세월 속의 나그네임을 읊었다.

길은 이같은 여정의 중심이다. 해서 불가에선 그 길을 가며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운수납자(雲水衲子)라 했다. 구름처럼 물처럼 어디에도 머무름이 없이 떠도는 수행자란 의미다. 

”잃어버렸습니다/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다/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길은 돌담을 끼고 돌아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담 저쪽에 내가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잃은 길을 찾는 까닭입니다.“

‘길’이라는 윤동주 시인의 시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매번 ‘걸어온 길 위의 편린(片鱗)들이 아스라이 빛을 발하고 앞으로 가야할 길은 짙은 무중(霧中)’이라 느낀다.

그렇지만 루쉰이 말했던 것처럼 아직 나지 않은 희망의 '길'이 있음도 '여민동락 200회'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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