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전도지를 들고 전도에 나섰습니다. 문서선교본부에 가면 전도지를 무상으로 공급하여 주었습니다.

'박 군의 심정'이란 제목의 전도지였는데 쉽게, 짧게, 그림을 곁들여 짜여진 내용이어서 사용하기가 좋았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이곳저곳을 전도하러 다니던 중에 청계천 빈민촌에 마음이 갔습니다.

청계천 지역 마장동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청계천 둑 가로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지어져 있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너무나 힘들어 보여 자꾸 마음이 그곳으로 쏠렸습니다. 그때부터 서울 시내 판자촌 지역들에 대하여 조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서울 시내의 판자촌 사정을 알아가게 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서울 시내 큰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판자촌들이 있었습니다.

그 수가 무려 200만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청계천 지역과 청계천에 이어 있는 마장동 판자촌의 사정이 가장 나빴습니다.

청계천과 마장동 일원에 무려 12만 세대가 판자촌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린벨트가 있듯이 판자촌 벨트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나는 틈나는 대로 판자촌 지역을 찾아다니며 전도하였습니다. 실은 말이 전도이지 내용인즉 제대로 하는 전도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전도에 경험이 없이 의욕만 앞섰던 나인지라 그냥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도지 '박 군의 심정'을 드리면서 '예수 믿읍시다' '교회 나갑시다' 하며 다녔습니다.

그런 중에 1971년 여름방학 즈음에 한양대학교 뒤편 송정동 판자촌 지역에 필이 꽂혔습니다.

처음 시작은 판자촌 주민인 김종길 씨를 만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김 씨는 가방끈은 짧았어도 영성이 깊고 적극적인 성격인 분이었습니다.

새 집에 도배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가 나를 한양대 뒤편인 송정동 판자촌으로 안내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송정동 74번지 한 번지 안에 1600 세대가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녔던 판자촌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김종길 집사의 안내로 그곳을 알게 된 나는 여전히 '박 군의 심정' 전도지를 들고 판잣집들을 한 집 한 집 방문하며 전도지를 돌리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정에 들어가 "여보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아무런 기척이 없기에 아무도 없나 하고 열려진 방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계속)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