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척추결핵을 앓던 김학형이가 기적적으로 낫게 됨으로 인하여 드디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청계천 판자촌 송정동 74번지에는 1600 여 세대가 집단촌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서울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학형이가 곱추병(?)에서 나았다는 소문을 듣고는 나에게 예배당 세워달라는 말을 몇 차례 듣고는 그 마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과정을 마친 후에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시작할 것인가에 생각을 몰두하였습니다.

내가 다니는 장로회신학대학은 광장동 워커힐 곁에 있습니다. 저녁나절 워커힐 뒷산으로 올라가 묘지들 사이에 꿇어 앉아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청계천 빈민촌에 개척 교회를 세우고 빈민들과 함께 살아가며 섬기는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지금 시작하여야겠습니까? 졸업 후에 시작하여야겠습니까?"

열흘 정도 기도드리는 중에 마음에 확신이 임하였습니다.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내 결심을 동급생들에게 말하였더니 모두들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충고하였습니다.

"김진홍 전도사, 생각은 좋은데 지혜롭게 하여야지 않겠는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빈민촌으로 들어가서 나중에 오도 가도 못하는 낭패를 당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스러운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염려해 주는 핵심이 경제적인 뒷받침이었습니다.

동급생들이 권하기를 빈민촌에 개척을 시작하려면 그렇게 맨주먹으로 의욕만 앞세워 시작할 것이 아니라 큰 교회의 지원을 받든지 아니면 사업을 크게 하는 장로님의 후원을 확보한 연후에 시작하는 것이 지혜롭지 않겠는가 하는 충고들이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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